​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겨울에 쓴 편지

선남 1 921

 

겨울에 쓴 편지

 

 

달빛에 비친 제 그림자를 보고

무서워 짖던 순하기만 했던 누렁이처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

겨우내 편지를 보냈다.

몇 년 만에 처음 연락하는 사람도 있었고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도 있었다.

편지의 내용도 대부분 안부 편지였고

밑도 끝도 없는 선문답 같은 글귀들이었다.

딱히 답장을 기다리는 편지도 아니었다.

주소를 쓰고 우표까지 붙여 놓고도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도 있었다.

긴 겨울밤 그렇게 편지를 쓴 것은

누군가에게 보내기보다는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이겨내려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 그림자를 보고 무서워했던

어리숙한 누렁이처럼

내 어리숙한 마음에

그리움의 달빛이 어리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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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
손가락 마디에 굳은 살이 베이도록 편지를 썼다. 편지 형식을 빌려 온 건설노조 초창기부터 회고록에 가까운 내용들이었고, 그동안 활동으로 보지 못했던 한국 노동문학사라 할 만한 시집들을 수백권을 읽었다.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낭송도 해보고, 필사를 해보았다. 그때마다 느낌이 다 다르게 와 닿았다. 감옥을 학교라고 했던가 그렇게 감옥에서 보내는 1년을 편지를 썼다. 얼마전 돌아가신 문병란 선생님과의 필담도 잊지 못한다. 시를 쓰고 쓴시를 편지에 보내면 선생님은 새벽을 꼬박 세웠어라도 답장을 일일이 보내주셨다. 당시 백기완선생님의 글월 "선남이에게"라는 시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도 많이 있었다. 출소할때 쓴편지와 받은 편지만 라면 박스로 두 상자였다. 가슴을 떨려 아직 그 편지들을 꺼내 읽지 못한다.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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