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우리들의 사랑은 늘 새로운 시작이고 고여있는 아픔이다
-명동성당 농성 마지막 밤을 보내며
공연은 끝났다.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서둘러 내려가고
아쉬움과 서러움에
남은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고
일을 마치고 씻지도 못하고 달려왔던 현장 조합원은
분노한 가슴을 삭이지 못해 골목길에서 고함을 지른다
당한 만큼 되돌려 주겠다던
연사의 투쟁사는
그림자도 남겨두지 않았다
우리의 투쟁은 늘 새로운 시작이었고
늘 고여 있는 아픔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이주노동자 동지와 자리를 남겨두고
명동성당 텐트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몇 시쯤이었을까
추위에 잠을 깨었고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 비치는
지난 1년간 상처들처럼 치워지지 않는 용품들
휴지, 숟가락, 종이컵, 책, 농성에 필요했던
일상용품들이 아프게 지친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들이 희망은 어디쯤 왔을까?
바람이 분다
어디쯤에선가 밀려올 새벽에
명동성당은 표정없이 백 년을 그렇게 서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천한 사람을 위해 오셨다던 예수의 모습은
흉물스럽게도 이주노동자 비닐 천막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으리라
우리들의 투쟁이 그렇듯이
우리들의 사랑 또한 늘 새로운 시작이고
고여 있는 아픔이다.
날이 밝으며
새벽에 일 나가는 사람들이 틈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겠지
추석이 오기 전에
구속된 동지의 면회라도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