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스타케미칼

선남 0 1,203

스타케미칼

끝이 안 보인다.
하늘의 끝이
굴뚝의 끝이 안 보인다.

...

올라 올 때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 왔지만
내려가는 길을 잃어 버렸다.

올라 올 때는 마지막이라 생각했지만
내려가는 길은 마지만 순간이 어딘지 잊어버렸다.

올라 올 때는 살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지만
살기 위해 내려갈 길이 없어졌다.

멈춰버린 기계
멈춰버린 노동의 시간들보다
잃어버린 기억이 하늘 끝 구름처럼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수백 수천의 함성으로 몰려와,
수백 수천의 깃발로 몰려와,
수천 수만의 노동해방의 물결로 몰려와,
흩어져버린 시간들이다.

이십대 청춘의 꿈은 무엇이었던가?
가슴 두근거리며 보았던 근로기준법
심장이 멎을 것 같았던 선언들
동료의 등만 보아도 믿음직스러웠고
동지의 팔뚝만 보아도 듬직했던
청춘의 꿈.

공단 사거리에서 지나는 통근버스만 봐도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기억의 시간들.......

2,

사지를 찢어 놓고,
갈갈이 찢어 놓고,
기계와 전선과, 고철로 팔아버리고,
우리들이 사랑을 속삭였던
공장을 분할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지침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연대,
투쟁보다는 행정적인 순서가 먼저라는 조직,
저 멈춰버린 기계보다 답답한
노동조합 관료들의 행정,
저 바리케이트보다 높은 연대의 장벽들,
자본의 더러운 뒷거래보다
더 계산에 밝은 정파주의,

살려고 올라 온, 45m 굴뚝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
미친 듯이 비가 쏟아 붙는다.
아! 여기에서는
마음껏 고함을 질러 본다.
어용을 어용이라 말하지 못하는
저 아래 답답함 보다 낮다.
자진퇴사 서명을 받는
저질스러운 관료행정의 질서보다
낮다.
자진퇴사 서명을 갖다 바치고
지들만 챙긴 얄팍한 월급봉투.

3.

누가 와서 묻는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것이냐고,
답답하지만 나도 알 수 없다.

누가 와서 묻는다.
최종적인 요구가 무엇이냐고
답답하지만 우리도 알 수 없다.

누가 와서 묻는다.
희망이 있느냐고, 교섭의 실마리가 있느냐고
답답하지만 알 수 없다.

그 밑도 끝도 없는 질문과,
그 밑도 끝도 없는 답변들

누구도 입 밖으로 내기 힘들어 하는
동료들의 사직서를 회사에 갖다 바치고
사표 낸 지회장이 아직도 노동조합 간부냐 물어 보다.
투쟁하지 않는 조직이 민주노조냐고 묻는다.
지부의 지침, 본조의 지침이 없이는
조합원들의 발길도 막는 그대들의 연대가
단일 노조냐고 물어본다.

교활한 독사의 혀가
자본의 혀만 아니라는 것을
더러운 뒷거래가 자본의 전유물만 아니라는 것을
통렬하게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는가!
그것이 먼저 아닌가?

멈춰버린 기계를 돌리는 것보다, 먼저
멈춰버린 노동의 시간을 찾아
멈춰버린 청춘의 꿈으로
단사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의 장벽을 넘자던 노동의 꿈과 희망을
먼저 찾아야 하지 않는가?

4.

해결사의 능숙한 일처리보다
서툴지만
함께 하는 노동의 시간이 필요하다.
끊어져버린 사다리를 놓고
잃어버린 노동의 시간을 찾아

다시

다시

어깨를 걸자
투쟁의 시간은 아직도 많이 있지 않은가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의 양떼가 아니라
강고한 철의 조직으로
연대의 손길을 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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