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그리움마저 두려웠다.

선남 1 876


그리움마저 두려웠다

 

 

누가 엿듣는가.

두려웠다.

 

누가 찾아올까

두려웠다.

 

그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죽어서는

한 세상 손 놓지 말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를 따라 생의 미련을

놓고 싶었던 사람

 

그 사람이 혹 살아서

찾아올까 두려웠다.

 

어떻게 죽었는지

어디서 죽었는지

꿈에라도 한번 보고 싶었던 사람

그 사람이 찾아올까 두려웠다.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면서

혹 그가 살아서 돌아올까 봐,

두려웠다.

 

인간적인 그리움보다

현실적인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빨갱이의 아들,

빨갱이의 마누라,

 

자식 마누라 다 팽개치고 세상을 바꾼다고

어느 골짜기에서 총 맞아 죽었는지

칼 맞아 죽었는지

원망과 증오스러운 한평생이었어

 

!

한 번만이라도 불러보고 싶었고

한 번만이라도 이야기하고 싶었던

아버지!

 

벽을 보고, 산을 보고

하늘을 보고

강을 보고

숲을 보고

달을 보고

수 없이 불러보고 싶었던

그리움마저 두려웠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선남
그랬다. 증언에 의하면 그 그리움마저 두려웠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까지 잔인하게 짓이겨 놓기에 살아 남은 유족들은 연좌제로 늘 감시의 대상이었다. 공안경찰에게 불려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남편의 소식을 들을때마다. 간첩이 남파되는다는 뉴스가 나온 뒤에서 어김없이 끌려가 당했던 그 끔찍한 일상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자신이 남편을 그리워 하고 있다는 사실자체도 두려웠을까?
해방전후사에 대한 역사청산은 친일청산과 함께 민간인학살에 대한 보상과 사죄 치유가 있어야 할 일이다.
카테고리
반응형 구글광고 등
최근통계
  • 현재 접속자 6 명
  • 오늘 방문자 378 명
  • 어제 방문자 704 명
  • 최대 방문자 2,936 명
  • 전체 방문자 471,125 명
  • 전체 회원수 15 명
  • 전체 게시물 15,811 개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