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진달래가 좋아서
진달래가 좋아서...
피보다 붉은 진달래가 좋아서 찾아든,
화악산 평밭마을
산이 좋고, 물이 좋고, 공기가 좋고, 사람이 좋아서,
사람과 어울려 들에 핀 꽃처럼
그 선한 사람들의 눈빛이 좋아서,
그렇게 어울려 사람도, 들의 풀과 같이 산의 나무와 같이
그렇게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평화의 땅,
평밭마을의 별빛이 되고 싶었습니다.
127번
128번
129번
평화를 지키려는 사람의 가슴에
죄수 번호를 붙이듯이
산허리를 잘라내고, 수십 년 수백 년 나무들을 잘라내고
송전탑을 세우겠다고 이름 붙인 송전탑의 번호들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을 지납니다.
봄비가 내립니다.
새벽부터 젖어드는 봄비에
진달래는 더 붉고,
비에 젖는 진달래의 눈물은
9년의 저항과 항쟁으로
선홍빛 눈물로 타고 흐릅니다.
진달래가 좋아서 찾아든 평밭마을,
잘려나가 소나무 밑둥지에도
댕캉댕캉 잘려나간 참나무 옆에서도
3월의 진달래는 저리도 붉은데,
한전 놈이 엔진 톱을 들이밀 때,
소나무를 껴안고, 내 다리를 잘라내고 내 팔을 잘라내라고
온 몸을 내맡기고,
경찰 놈이 개떼처럼 덤벼들 때,
옷을 벗을 던지면 차라리 나를 죽여라고
그렇게 꽃이 피고 또 꽃이 지면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삼백예순여섯 날
1년을 하루 같이 9년의 세월이 어제인 듯이
항쟁과 저항의 세월은,
평화의 땅을 지키고 싶었던 세월이었습니다.
착한 사람들의 선한 눈빛을 닮은 별 빛,
화악산 평밭마을의 별빛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평밭마을의 하늘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765 철탑이 평화의 땅을 가로질러, 괴성을 지르며,
핵에너지, 죽음의 빛을 나르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죽어가는
죽음의 골짜기가 되도록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765Kv 송전탑 번호. 129번,
무덤을 파고,
쇠사슬을 감고,
가스통을 껴안고,
기름통을 부여안고,
죽으면 죽으리라!
결사항전 무덤의 요새는
신고리 원자력의 무덤이 될 것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선한 사람들의 부활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이 치우
유 한숙 어르신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는
밀양의 눈물,
저항과, 항쟁의 세월에도
꽃이 피는 부활의 이름으로
129번은 끝내 살아 오를 것입니다
저 붉은 진달래꽃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진달래가 좋아서
진달래를 찾아서 평화의 땅에
그냥 들의 풀인 듯
산의 나무인 듯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