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울지 말아요, 다시 꽃은 피는데
학이 날개를 펼치듯 펼쳐진 승학산
봄이며 붉게 타오르던 철쭉
그 품에 안겨 살아왔던 보라마을
마을의 들풀처럼 나무처럼 그렇게, 그렇게
그냥 사는 듯, 죽은 듯, 나무인 듯, 풀인 듯,
살아왔던 고향 땅.
나라를 빼앗고, 땅을 빼앗아도 빼앗기지 않았던
고향산천에 쇠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치고
거미줄 같은 고압 철탑이 들어선다고
밭농사 논농사 포기하며
얼마를 살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동안은
포기할 수 없었던 보라마을
“살아서 송전탑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없다”며
불꽃이 되어 타올랐던 보라마을 이치우 어르신
울지 말아요, 다시 꽃은 피는데
무덤을 파헤치고 그 위에 송전탑을 세운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고도 송전탑을 세우겠다고 하는
국가 권력, 한국전력
다 끝난 것이라고 포기하지 말아요
지난 8년을 어떻게 싸워 왔는데
애통하지 말아요, 울지 말아요
다시 꽃은 피는데
보세요, 다시 꽃은 피는데
봄은 오고 있는데
그 눈물의 세월이
우리들의 영혼을 말리고 태웠던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우리들을 이간질하고
교활한 뱀의 혀로 농간하던 한전 놈들은
쇠말뚝을 박고 저희들의 돌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니까요
보세요, 봄은 저렇게 다시 우리 곁에 오고 있어요.
다 끝난 것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잠깐 왔다 가는 연대라 생각하지 마세요,
보라마을은 밀양에만 있는 보라마을이 아니에요
철탑이 지나는 마을마다.
핵 원전이 들어서는 마을마다
한 번쯤 왔다 간 연대의 손길마다
어르신들의 그 거친 손을 잡은 사람들 가슴에
다시 보라마을의 봄은 오고 꽃은 피고 있어요
울지 마세요, 다시 꽃은 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