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아득히 오래된 상처에 다시 피가 흐른다
밤새 책을 읽고 토론하고
새벽이 가까워서야 겨우 잠이 들곤 했던
아득히 오래된 기억이 너를 통해 다시 생각난다.
그때는 시대의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역사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주저 없이 그 길을 걸었다.
고민도 선택의 여지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겨울 두 돌도 되지 않은 너를 들쳐 업고
집회 현장을 쫓아다녔던 일들이
이제는 아득히 오래된 기억이 되고
아비는 어느덧 세월의 한파에 주눅이 들었나 보다
골방에 모여 앉아 촛불 하나 밝히고
역사 앞에 흔들리지 말자고
온몸에 전율이 흘렀던 아득한 기억이
너를 통해 아파지는구나.
아비가 투쟁하고 현장을 돌아다니고
투쟁하고 감옥이나 들락거리면서
네가 얼마나 아팠고
힘들었는지 눈길 한 번 주지 못했구나
부끄럽게도 아비는 그랬다
너희들만은 아비가 살았던 세월을 살지 말았으면
너희들만은 아비가 걸었던 가시밭길을 걷지 말았으면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취직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렇게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인간을 서열화시키는
수능 입시 거부, 대학입시 거부를 말할 때
아비는 가슴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부끄럽게도 그랬다.
아득히 오래된 기억
아득히 오래된 상처에 다시 피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