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사상이 쌀이다.
병든 어매를 뒷산에 묻고
지어미 품에서 부황뜬 눈으로
그 슬픈 눈으로,
보채지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다.
눈을 감아 버린 어린 것을
애기 무덤 돌무덤에 묻고,
돌아오던 날 밤!
좌익도, 우익도 아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총이면 어떻고,
낫이면, 또 쇠스랑이면 어떤가
경찰서 일장기가 내려지고,
다시 성조기가 올라도
사람은 그놈이 그놈이었고
하는 짓은 일본 놈 앞잡이로 하는 짓이나
미국놈 앞잡이로 하는 짓이나 같았다.
사상은 쌀이다!
좌익도, 우익도 아니고 밥이다!
이념은 살아남아야 하겠다는 것이고,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친일 경찰을 무장해제 시키고,
대구는 해방구였다.
46년 10월 1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불길이 번지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사상은 쌀이었고
굶주림에 이념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사상이 쌀이다'라고 하면, '사상'자체가 '쌀'이라는 말입니다.
사상을 좌/우로 나누던 시절에, 좌도 우도 모르고, 그러므로 사상이 좌도 우도 아니고
다만 '쌀'이 하늘이고 목숨이고 이념인 사람들의 상황을 쓰고 있으므로,
이 시에서는 '쌀'이 그 사람들의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그사람들의 사상은 (좌도 우도 아니고) 쌀이다'라는 뜻이지,
'사상이란 쌀을 말한다'는 것을 쓰는 게 아니므로,
'사상이 쌀이다' 보다는 '사상은 쌀이다'가 맞는 표현입니다.
'사상이 쌀이다'는 '사상을 가지면 쌀이 된다'는 뜻이 되므로, 시 내용과 시제가 부합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a이/가 b이다'로 보면,
'철수는 술이 밥이다'라고 하면 술을 밥대신 마신다는 뜻이죠.
그대로 대입하면, '철수는 사상이 쌀이다'하고 하면 쌀대신 사상을 갖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술을 먹으면 밥을 안먹어도 배부르듯이, 사상을 가지면 쌀이 없어도 배부르다는 뜻이됩니다. 사상이 쌀만큼 좋다는 것인데, 이 시에선 그 뜻이 아니고, 사상보다 쌀이라는 뜻이죠.
'a은/는 b이다'로 보면,
'철수의 술은 밥이다'라고 하면, 철수가 먹는 밥의 종류는 술이라는 뜻이죠.
'철수의 사상은 쌀이다'라고 하면, 철수가 가지는 사상의 종류는 쌀이다가 됩니다. 그러니까 철수에겐 쌀이 사상이고, 밥이 술이 되는 것입니다.
어렵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
그러니, 제목으로 돌아가서, '사상이 쌀이다(사상을 갖는 것이 쌀이 된다)'가 아니라, '사상은 쌀이다(그들의 사상은 좌도 우도 아니고 쌀이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목에서 '사상은 쌀이다'고 하면 (제목이기 때문에) '사상이 쌀이다'하고 차이도 없어 보입니다. '쌀이 사상이다'라고 해야 쉽게 내용과 부합하게 됩니다. 아니면, '그들의 사상은 쌀이었다'로 풀어주어야 할까요?
시이기 때문에 (46년 10월 대구의 민중봉기 상황에서 민중의 사상은 좌도 우도 아닌 쌀이었다)는 말이 압축표현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단지, 이 시에서는 제목과 내용이 상반될 수 있는 점이 있어 물음표를 달아 봅니다.
그 다음의 일은 작가의 생각에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설명하기가 복잡해서 한참 생각했네요^^)
(마지막줄, '굶주림에 이념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에서는 '굶주림의'가 맞습니다. 이는 '나의 조국'과 '나에 조국'같은 문법이긴 한데요, 시에서는 '굶주림에'로 써도 되긴 합니다. '굶주림에 (처한 상황에서의) 이념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란 문장에서 (처한 상황에서의)가 시적으로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
제목과 내용에서의 은/는/이/가 활용이 달라 이리저리 찾아보고 생각해 보다가 한 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