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가창 땜

선남 0 1,114


가창 땜

 

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나뭇잎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산허리까지 내려앉은

짙은 안개가 피어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으며

이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뚫리지

목 놓아 울어도, 울어도

빗소리에 묻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며

다시 살아 볼 용기가 생길는지요.

 

이제까지 살아온 것이 용기만은 아니었습니다.

죽지 못해서 살았던 것은

죽을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사람이 살아갈 만한 세상이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세상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세상에

그래도 미련이 남았던 것은

역사 속에서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그 날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욕되지 않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폐도 없이 제사를 모시고

영정사진도 없이 향을 피우면서

그래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 당신이 꿈꾸셨던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운무 걷히고, 선명하게 다가오는

앞산의 소나무처럼 맑은 웃음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되었다. 일본 놈들이 물러갔으니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여,”

땅은 땅을 일구는 농민의 것이고,”

공장은 일하는 사람들 것이여.”

일본놈 앞잽이들 몰아내고 새 세상을 여는 거야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패배자가 아니라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역사의 산자로

아버지 당신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세차게 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머리를 풀고 하얀 소복을 입고

쓰러져 울고 또 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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