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아들아! 내 딸들아!

선남 0 1,131

아들아! 내 딸들아!

2001년 한국통신 비정규직 투쟁 200일 연대의 밤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

단 한 번

자랑스러웠던 때가 있다면

아들아!

이천일년삼월이십구일이었다.

 

학교에서 부모님의 직업을 알아 오라고 했을 때

자랑스럽게 한국통신 직원이라고 했다지

미안하구나

그러나

직장에서 네 아버지의 이름은

인부 김 씨였다

똑같이 출근하고 똑같이 일을 해도

반쪽짜리 월급봉투에

일요일 공휴일도 없이 미친 듯이 일에

매달려야 했다

 

어이 김 씨, 어이 이 씨

개처럼 불러도 대꾸 한마디 없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언제 모가지가 잘려나갈지 모르는

비정규직 임시직 노동자였기 때문이었다.

 

 

지난겨울

분당 본사 시멘트 바닥 위에서

비닐 한 장으로 노숙하면서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보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싸늘한 냉대와 무관심이었다.

 

비정규직

자본의 야만적 경쟁논리에

빼앗기고 쫓겨나고 매 맞는

네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아들아! 내 딸들아!

이 순간

우리는 다시 한 번 짐승의 울음으로

끌려내려 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날

굴욕과 모멸감에 온몸 부르르 떨며

땅속을 헤매고, 전봇대를 기어 올라야하는

길들여진 노예,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이제

죽음으로 거부하려 한다.

 

이천일년삼월이십구일

이제

날이 밝아 오는구나

바람 한 점 없는 삼월 하늘

참 탐스럽게 눈이 내린다

 

"아빠 뭐해"

"아빠 언제 와"

목이 매여 아무 말 못 하고 끊어버린

마지막 통화였는데

지금

네 목소리가 들리는구나

 

끝도 없이 새까맣게 밀려오는 전투경찰

특수 훈련된 진압군에 의해

저들의 포로가 되어

저들의 법정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아들아! 내 딸들아!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늘이 뿌옇게 흐려지는구나

 

가진 자들만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저들의 질서와 법을 위해

저들만의 선택된 안녕을 위해

버림받은

저주받은

비정규직, 노예 노동을 죽음으로 거부하려 한다

돌아가마

꼭 돌아가마

자랑스런 노동자의 이름으로

네 아버지의 이름으로

돌아가마!

아들아! 내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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