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파업을 선언한다. 기계를 멈추었다

선남 1 1,046


파업을 선언한다. 기계를 멈추었다

 

 

1.

 

장난처럼 내뱉는 원청 반장의

한 마디에 해고가 결정되는

파리 목숨이었다

우리는

 

원청이 버리고 간 낡은 작업복,

안전화도 주워 신지 못하는

죽으라고 밑바닥만 기는 노예였다

우리는

 

눈빛만 마주쳐도

오금이 저린 듯 움츠러드는

지지리도 못난 하청 노동자였다

우리는

 

공장 문을 들어서는 순간

하청의 사슬에 묶여

등 짝 내리꽂히는 채찍에 피멍 드는

캐리어의 노예였다

우리는

 

물량이 줄어들면 잘리고

혹독한 노동에 견디다 못해

산재라도 나면 곧바로 해고시키는

우리는 저들 앞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쑥쑥 이윤을 뽑아내는 짐승이었다

 

2.

 

인간으로 일어선다는 것은

싸늘한 냉대와 모멸감에

노동자로 두 주먹을 움켜쥔다는 것은

먼저

우리가 우리 속에 가두어 버린

무기력과 체념을 떨쳐 버려야 했다

 

언제고 떠나버리면 그만이라는

작은 이기심까지

먼저 버려야했다

 

직장 폐쇄를 무슨 장난처럼 해 대는

저들 자본 앞에서

 

눈도 깜짝하지 않고 청부 폭력을 사주하는

저들 앞에서

무더기로 잡아넣고 보는

저들 공권력 앞에서

 

우리가 먼저

원청, 하청의 벽을 허물고

저들 멋대로 갈라놓은

하청업체 울타리를 부수고, 넘어

하나의 노동자로 일어서야 했다

 

파업의 깃발, 해방의 깃발을 움켜쥐고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희망으로 일어서야 했다.

 

3.

 

이윤의 목줄을 거머쥐고

자본의 심장에 해방의 깃발을

내리꽂는 순간이었다

 

한숨과 탄식으로 삭여왔던 오랜 침묵

빼앗긴 노동자의 이름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처럼

초국적 자본의 식민지 노예처럼

노동자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살아왔던 착취의 사슬을

일시에 끊어버린 순간이었다.

 

생산하는 자! 노동자의 이름으로

투쟁하는 자! 역사의 주인으로

파업을 선언했다

기계를 멈추었다

 

그것은

저들 자본이 갈라놓은 분열을 넘어선

하나뿐인 노동자의 희망이었다

 

그것은

비정규직 처우개선의

허상이 찢겨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노동자의 피고름을 흡빨아 대는

자본의 심장을 멈추게 한

유일한 무기였다

 

그것은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투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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