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남 / 1966년생 / 목수

- 증언 1 -

선남 1 894


- 증언 1 -

 

 

묻지도 말아라.

알고 싶어 하지도 말아라.

슬퍼하지도 말고, 표정도 짓지 마라.

 

세상을 이기려고 하지도 말고,

친구를 이기려고 하지도 마라.

빨갱이 자식이 되어버린 업이라 생각하고

기억도 지우고, 생각도 지워라.

 

그렇게 죽은 듯이,

그렇게 없는 듯이,

그저 살아남아야지,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빨갱이 자식이라고 매질하고,

빨갱이 자식이라고 누명을 씌워도,

억울해하지도 말고,

분노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마라.

 

언젠가는 애비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언젠가는 어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국가가 경찰이 어떻게 했는지,

살아남아서 증언하고,

그 뼈에 세긴 이야기들을,

그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들을,

증언할 때까지

살아남아라.

 

남들이 입는 고운 옷에 눈길도 주지 말고,

남들이 먹는 고기반찬에 냄새도 맡지 말고,

친척들이 먼저 외면해 버린 서러움을

서럽다고도 하지 말고,

피붙이 살붙이들이 발길을 끊어버린

친척들의 담벼락은 쳐다보지도 말라.

 

보아도 본 것이 없고,

들어도 들은 것이 없고,

아파도 아픈 곳이 없고,

배가 고파도 표정을 짓지 말고,

서럽고 서러워도 눈물은 보이지 마라.

 

먼 친척도 가까운 이웃도,

가슴에 담아 둔 이야기 하지 말고,

그저 살아만 있으면,

하늘 아래 못 할 짓이 없고,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역사 앞에서 이야기할 때가 있다.

 

네 말이 증언이되고

네 말이 역사가 되고

살아온 세월들이 역사가 될 때까지

못 살겠다는 말도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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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선남
남편을 잃은 미망인, 유족의 어머니까 살아생전 늘 하시던 말씀이라고 증언을 해 주셨다. 왜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지 왜 침묵을 해야 하는지 왜 살아 남아야 하는지 죽겠다는 말도 하지 말아라고 하는 그 증언의 대목에서 그 어머님의 원한이 하늘을 덮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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