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덕/ 1963년생 / 자동차 부품 하청노동자
쇳가루 날리는 공장 담벼락 아래
무성한 잡초 뽑아내고
굳어버린 땅 일구어
작은 텃밭 만든 이씨 아저씨
봄엔 보드라운 상치 뜯어 한줌씩 건네주고
주룩주룩 여름비 내리는 날에는
따뜻하게 삶은 옥수수 한바구니
가을엔 애써 가꾼 배추며 무 뽑아
봉지마다 넣어 주시던 이씨 아저씨
머리 허옇게 눈 내리고
검게 그을린 움푹 팬 얼굴엔
지난 삶에 고단함이 서려있어도
세상 시름 다 잊어버릴 수 있어
그저 흙이 좋다는 이씨 아저씨
낼 모레면 환갑나이
시집장가 못간 자식이 둘이나 있건만
자꾸만 사는 게 힘겨워
주저앉고 싶다는 이씨 아저씨
젊은 놈들이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이나 할 것이지
왜 노동조합 만들어 내 공장 간섭한다고
열 받은 우리사장
두 달 째 공장기계 세워놓고
힘없는 늙은 놈들
골치 아픈 젊은 놈들 나가기 전에는
공장 돌리지 않겠다고 엄포 놓는
무식한 사장 때문에
이씨 아저씨 밭두렁에
술병만 쌓여가고 있다네
한평생 고생만 하며 살아온 할망구한테
미안해 점심값 말도 못하고 소주 한 병
달랑 주머니에 넣어
허옇게 서리 내린 밭두렁 일구며 빈속에
깡 소주로 하루하루 보내는 이씨 아저씨
어느새 허허로운 밭두렁에
빈소주병만 쌓여가고 있다네
2001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