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덕1963년생 / 자동차 부품 하청노동자

 

공장풍경2 - 사기결혼

해방글터 0 1,053

 

 

점심 먹고 언니들하고 자리 깔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다가 결혼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옥임이 언니 "나 사기 당해서 결혼했다" 놀랜 우리들 "왜"하고 묻자. 

시골에서 농사짓는게 하도 힘들고 답답해 도시로 탈출할 기회만 보고 있는데 어느날 중매가 들어왔다. 선보는 자리에서 신랑될 사람은 손톱에 매니큐나 바르면서 평생 놀고먹으면 된다고 해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고 오늘까지 이 고생하며 살고 있다고 입에 허연 거품을 물고 하소연을 하자 

 

이번에는 용숙이언니 "난 울아버지 땜에 이 고생하고 산다"고 한다. 시골 농사짓는게 싫은 언니는 시집 안 간다고 하니 엄마가 아버지 더러 건너마을 신랑 될 사람 집안 좀 살피고 오라해 아버지가 탐문하러 가셨는데 탐문은 고사하고 중신애비 만나 밥에다 술까지 얻어 마시고 무조건 시집가라 해서 강제로 시집갔다고 한다.

 

그때 화복이언니 "나도 속았다" 중매가 들어왔는데 남자가 서울에서 회사 생활한다는 말에 결혼하면 시골이 아니라 서울에서 살겠다싶어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신랑이 서울안가고 시골에서 농사짓겠다고 시골로 가겠다는 바람에 몇날 몇일을 울었더니 시아버님이 "새 사람아 미안하다 고만 울어야 우짜겠노" 달래는 바람에 서울생활 꿈은 날아가고 그길로 시골로 내려가 농사짓다 애 낳고 살다 부산으로 왔다는 화복이언니

 

이번에는 내 차례다. 딸만 일곱에 가난한 어부인 어버지는 늘 자식들이 굶는게 마음이 아파 "이 다음에 촌에 시집가라 땅이라도 있으면 배는 안 곪을끼다" 어릴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면서 컸던 나에게 함께 어울려 다니던 한 남자 "울 동네 땅은 다 우리 집안꺼라 동네사람들이 우리땅 밟지 않으면 지나 갈 수가 없다”는 말에 결혼하고 나니 홀어머님 혼자서 4남매 키운다고 낮에는 공장 다니시고 아침저녁으로 남의 땅 부쳐 농사짓고 계셨다고 하니 사람들 배꼽잡고 넘어간다.

 

사기결혼 당했다고 서로들 푸념을 늘어놓자 동갑내기 둘엽이 "모두들 결혼 잘했네요.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만났잖아요" 맞는말이다.

 

매캐한 고무냄새가 찌든 공장, 시커먼 고무들이 절망처럼 늘어져있는 현장에서 우리는 생애에 가장 설레이고 행복했던 젊은날로 돌아가 잠시나마 20대 풋풋한 처자로 머물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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