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덕/ 1963년생 / 자동차 부품 하청노동자
혁명을 외치며 시대를 투쟁하던 동지들이
이 길이 희망이 아니라며 떠나가도
노동해방의 길에 함께 가자고 맹세했던 동지들이
조여 오는 자본의 음모에 기어코 등돌리고 떠나가도
그는 민들레의 희망을 믿었습니다.
전태일이가 가슴 시퍼렇게 사랑했던 어린 여공들을 만나러
마찌꼬바 작은 공장 문을 들어설 때 바로 그곳에 전태일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굴리다 못다 굴린 덩이를 밀며 낮은 곳에서 사랑을 배웠습니다.
가난하고 서글펐던 사랑이었지만
그는 전태일이가 어린 여공들한테 내민 풀빵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다가 감옥에 끌려가고
공장에서 쫓겨나도 그는 전태일을 가슴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믿어준 여인과 결혼을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 태어나 자라도록
남편노릇, 아버지노릇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해도
늙어가는 부모님 앞에 불효자식으로 살아도
더 큰 세상을 위한 길이라 생각하고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 꾸역꾸역 삼켜야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때론
절망스러운 순간도
치욕스러운 순간도
분노로 치를 떨어야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눈물 감추며 이겨내야 했던 삶의 뒤안길에서
가슴 시퍼렇게 멍들어오는 아픔
쓴 소주로 삼켜도
희망이 있어 두렵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머리엔 검은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지고
고단한 삶의 훈장인 듯 이마에 깊이 파인 주름진 얼굴로
투쟁사업장 한쪽 모퉁이에서
해고노동자 천막농성장에서
매연으로 범벅이 된 도시 위에서
세상의 희망을 담은 촛불 앞에서
그는 전태일과 함께 있었습니다.
노동운동이 변절되었다고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라고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하다고
자본의 비수보다 더 날카로운 비수가 뒤통수를 향해 날아와도
그는
투쟁사업장 한쪽 모퉁이에서
해고노동자 천막농성장에서
매연으로 범벅이 된 도시위에서
세상의 희망을 담은 촛불 앞에서
그는 전태일과 함께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전. 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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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본과 정권보다 더 비판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들
우리의 비판과 비난의 대상은 분명 그들은 아닌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