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덕1963년생 / 자동차 부품 하청노동자

 

​슬픈 기억 하나

해방글터 0 657

 

 

우리들의 밥줄은 언제나 비열한 저놈들 손아귀에 있는가?

잘린 손가락으로 평생을 철판 자르고 

쇳조각 찍어내는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우리

공장 담벼락 넘어 세상은 왠지 겁나고 주눅 드는데

 

징계위원회 연다고 작업 도중 가시는 아저씨의 커다란 눈망울이

겁에 질려 애처롭게 자꾸만 뒤돌아보십니다.

밝은 얼굴로 "걱정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말씀 잘 하이소"

말은 하지만 걱정이 앞서 정문 앞까지 배웅해 드렸습니다.

손 흔들며 가시는 형주 아저씨 얼굴 위로 포개지는 또 하나의 얼굴

 

86년도쯤 인 듯 합니다.

신발공장 재단 검사로 일할 때 재단사 아저씨께서 굳은 표정으로

며칠째 일하고 계시기에 "무슨 일 있습니까?" 넌지시 물어보니

"집 주인이 전세값 올려달라는데 그것도 한꺼번에 이백만원을..."

말꼬리 감추시는 아저씨와 그때 한달 월급 겨우 40만원 받던 시절

애들 키우고 먹고살고 일년에 이백만원 벌려면 꿈같은 시대

임대차 보호법도 없다보니 주인이 올려달라고 하면 이사 가지 않는 한

올려줘야 했던 셋방살이 서러움이 짙게 베여있던 시절

 

그런데 한 사흘 후 재단하시던 아저씨가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재단판 위로 톡톡 튀고 있는 손가락 한마디

"엄마야" 소리 지르고 얼굴에 두 손 가린 채  고개 돌린 나 

눈 떠보니 옆에 일하시는 동료 분이 목 장갑으로 잘린 손가락 집어들고

재단사 아저씨는 장갑 사이로 베여 나오는 피를 싸고 계셨습니다.

관리자 따라 묵묵히 걸어가시던 아저씨를 보면서

하얗게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를 향해 

물기 젖은 눈으로 씩 웃으며 가시던 재단사 아저씨

 

목돈 필요하면 손가락 하나씩 짤라낸다는 소문이 결코 헛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현실이였다는걸 알았습니다.

 

15년이 훨씬 지난 지금 형주 아저씨와 재단사 아저씨가 겹쳐 보이는 것은

아직도 우리 노동자의 삶의 질은 그 옛날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슬픔이 현기증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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