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덕/ 1963년생 / 자동차 부품 하청노동자
명절은 명절인가보다
커다란 선물꾸러미 하나씩 꿰차고
상여금 받았다고 한 잔씩 하러 가는
사람들이 부럽기만하고
오늘따라 한 평 남짓한 경비실이
답답하기만 한 경비원 박씨
답답함 삭일 겨를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퇴근시간 맞추어
열심히 경례를 부친다
그래도 조립 실에서 일하는
막내아들 뻘 되는
철용이가 멋쩍은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곱게 포장한 양말상자 쓱 내밀고서는
"복 많이 받으소"한다
쥐새끼 한 마리 얼씬 못하게
이 큰 공장 문지기 해왔건만
남들 다 받아 가는 상여금 한 푼
떡값이라고 봉투 한 장 받아 본적 없는
하루에도 몇 수십 대 들락거리는
승용차 향해 경례를 부쳐야 했고
반장 명찰만 달고 지나가도
45도 깍듯이 인사해야 되는 고달픈 이 짓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용역인데
용역이고 뭐고 느낄 겨를도 없이
박 씨는 오늘도
퇴근길 정문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경례를 부친다
2002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