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덕/ 1963년생 / 자동차 부품 하청노동자
시집간 누이 꼭두새벽부터 전화에 대고
목욕탕 가서 기름때 벼껴내고
오는 길에 이발소 들러
면도까지 깔끔하게 하고
누이 결혼 때 사준 양복 빼 입고
시간 맞춰 호텔 커피숖으로 나오라는
다짐이 아니더라도
아무리 껴입어도 살 속으로
파고드는 외로움 못 이겨
올해는 노총각 딱지 떼어볼 심사로
살림꾼 같이 야무져 보이는 아가씨와
차 한잔에 3시간 시급하고 막 먹는 호텔 커피숖에 앉아
쑥스러운 마음 눈길 둘 곳 없어
애꿎은 소매 끝만 쥐어 띁고 있는데
아가씨 첫 마디가 "회사는요?"
복잡한 생각 스쳤지만 거짓말 할 수 없어
"자동차 부품 만드는 쪼매한 공장 다닙니더"
순간 굳어버린 얼굴 약속 있다며 서둘러 떠난
텅 빈 의자에 눈 박고 앉아
괜히 모를 수치심에 조여오는 목
어울리지 않는 넥타이가
내 목을 조이고 있었다.
2001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