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덕/ 1963년생 / 자동차 부품 하청노동자
가난한 집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마저 쓰러져 돌아가시고
큰오빠는 세상살이 고달프다 생목숨 끊고
배 타던 작은오빠 불에 타 죽고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국제시장 옷가게 하는 외삼촌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는 내 친구
내팽개쳐진 삶 주워 담아 보려고
눈물로 살아온 그녀는
부모형제 위해 멀리 중동 가
모래바람 마시며 죽도록 일해 부쳐준 돈
곗돈 넣다 홀딱 날려버린 어머니
허탈한 세상 술로 세월 보내다
벽보보고 찾아간 노동자 학교
노동법 배우면서 노동조합 만들고
조합장 되어 새 삶 찾은 남자와
단칸방 신혼살림 차렸다네
고운 꿈에 젖은 신혼 초
파업사업장에 라면 두 박스 줬다고
3자개입금지법으로 남편 감옥 가고
새 생명 잉태하여 입덧 심해도
시장골목에서 목이 갈라터지도록
소리 질러야 했던 그녀는
해고된 남편 허리까지 다쳐 막막해진 생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중고 봉고 한 대 사서
옷가지 싣고 노점상 시작했네
텃세 심한 시장골목 엄두도 못 내고
사람 뜸한 모퉁이에 옷가지 몇 벌 펼쳐놓고
찬바람에 언 몸, 호떡으로 점심 때우며
살려고 발버둥치던 노점상 내 친구의
가슴에 응어리 진 이야기 하나
애 맡길 곳 없어 들춰 업고 나와
찻길이 제 놀이터였던 큰놈 세 살 적
해질 무렵 펼쳐놓은 옷가지 챙겨 차에 싣고
남편은 시동 걸어 출발준비 서두르고
친구는 애 찾으러 "얼아! 얼아!" 부를 때
지나가는 아주머니 소스라치는 비명소리에
제 아빠 봉고 차바퀴에 끼어 놀던 아이를
하염없이 껴안고 울었다는 내 친구
몇 십 년 흐른 지금도 그때 일 생각하면
눈물부터 터져 나온다는 내 친구는
아직도 허름한 시장 통 한켠에서
옷 사라고 목이 터지게 외치고 있다
2001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