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중 / 목수


이민중 1 1,396

 

 

글을 쓴다는 것은...

지식의 배설. 경험의 배설. 감정의 배설.

 

똥의 모양은 다양하다.

. 소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등등

너무나도 다양하다.

 

누군가들의 배설물을 발효시켜서

나라고 하는 텃밭에 뿌려보았다.

 

발효가 빨리되는 배설물도 있고,

발효가 천천히되는 배설물도 있고,

자체발효가 않되서 효소나 미생물을

섞어서 발효시키는 배설물도 있다.

이런 똥들은 구수한 냄새가 난다.

 

이런 똥들을 배설한 사람들의 주변에는

고소한 향기가 돌고있다.

이런 똥들을 배설하는 사람들은

소화기관이 좋거나

영양가있고 신선한 음식을 섭취한다.

 

아예 발효가 되지 않고

썩어버리는 배설물도 있다.

이런 똥은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난다.

이런 똥을 싸는 사람들은

근처에 다가가기 싫은 역한 냄새를 풍기고,

먹는 음식들도 거의 화학물질수준이거나

쓰레기같은 것들만 쳐먹는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라고 하는 텃밭에 뿌린 배설물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소화기관을 거쳐서 나온

다양한 배설물들이라서

나라고 하는 텃밭의 과실수들이

영양분을 흡수하기에도

벅찬 과다영양상태의 토양이 되어있다.

 

글을 쓰는 이들은 얼마나 부끄러울까?

또는 얼마나 위대한가?

누군가가 자기의 똥을

발효시켜서 먹고있다니.

 

모든 사람이 훌륭할수 없고.

훌륭한 사람도 모든면에서

훌륭할수 없듯이

모든 똥이 좋은 발효퇴비가 되지는 않을터

밭의 상태에 따라서 다를수도 있다.

훌륭한 사람의 똥이라도

그 사람의 모든똥이

훌륭한 발효퇴비가 되지는 않는다.

 

매번 똥을 눌때마다

산고에 가까운 고통과 사력을 다한 생력을

써야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난 그렇지 못하다.

그랬다면 고통을 못이기고 쇼크사했거나

생력이 다하여 기력소실로 죽었을 것이다.

 

부지런히 똥을 누다보니

가끔은 감정을 올곧게 드러내어

고통의 한계치와 쾌락의 절정으로

똥을 누기도 했다.

그럴때는 탈진할만큼 힘들기도 하고,

기력을 되찾은 후에 후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묵은변이 장을 비우고 내려간것처럼

속시원하게 기분좋을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싸질러놓은

대부분의 똥들은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나고,

발효가 않되서 퇴비로도 못쓴다.

이럴때는 똥을 싸도 개운하지 않고.

똥을 닦아도 닦은 것 같지않다.

지금도 난 똥을 싼다.

그래도 난 똥을 싼다.

 

가끔은 아주가끔은

발효가 잘되서 퇴비로 쓰기 좋은 똥도 싸겠지?

희박한 희망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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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노동의 노勞는 '수고롭다'는 뜻입니다. 熒(밝을형) + 力(힘력)이 합해서 생긴 글자로, 힘써 밝히는 일입니다.
먹은 것은 내 몸에 소화, 흡수되고, 살아나가는 힘이 됩니다. 이 힘으로 하는 일이 노동勞動입니다.
보람없이 힘만 쓰는 일은 노努라 하는데, 노비노奴+ 힘력力이 합해서 생긴 글자입니다.
사람은 밥을 먹고 그 힘으로 노동을 해서 남에게 밥이 되는 일을 합니다. 그 밥을 먹은 이가 다시 일을 해서 나에게 밥이 됩니다. 이것이 서로 살아가는 상생의 밥이며, 밥의 값입니다. 밥값은 노동의 땀으로 갚는 것입니다. 제가 졸시에서 '밥 한그릇이 땀 한그릇'이라는 표현을 쓴것은 이런 뜻이었습니다. 또, 밥한릇을 만드는데 드는 노동은 땀이 한그릇이니, 소중히 먹고 여겨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밥만 먹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밥도둑, 땀도둑입니다.

따지고 보면 농부만 땀을 흘리는 게 아니라, 사채업자도, 조폭도, 기업의 관리자들도, 경찰도 누구나 자신의 밥을 먹기위하여 땀을 흘립니다. 그 땀이 너무나 이기적인 것이어서 남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만, 또 따지고 보면 노동자나 동민도 이기적이고 남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은 많습니다. 땀을 흘리는 그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위에서 더러운 땀을 흘리도록 조종하는 이들이 문제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결정으로 수많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임금을 훔치고, 때리고, 부당하게 만드는 자들, 그런 일을 시키는 자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들도 노고勞苦(괴로움을 참음)가 있고, 노심초사勞心焦思(애쓰며 속을 태움)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고와 노심초사에 비해 그들은 너무나 큰 이득을 갖습니다. 한종지의 땀으로 열솥의 밥을 구합니다. 이것은 그래서 옳지 않고, 그들이 열솥의 밥을 가질때, 열솥의 땀을 흘린 사람들의 노고가 그들의 손아귀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래서 공평하지 않습니다.

땀보다 과한 밥을 갖는 이가 첫째 나쁘고, 땀만큼 밥을 갖지만, 남의 밥을 빼앗아가는 일로 땀을 흘리는 이가 둘째 나쁜 것입니다.
글을 써도 첫째, 둘째의 글을 쓰는 이들이 있으니 이들의 글은 글이라기보다 덫이라고 해야합니다.

먹은 것이 소화, 흡수되지 않고 몸 밖으로 나가는 일이 배설입니다. 똥은 먹은 것이 내 몸을 거쳐 모양이 바뀐 것입니다.
배설이나 똥이란 단어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건강한 회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막히면 오히려 죽는 것입니다.
사람은 먹어야 살듯이, 싸야 삽니다. 먹지 못하면 죽고, 싸지 못해도 죽습니다. 그러므로 싸는 일은 먹는 일만큼 엄숙한 일입니다.
소화되지 않은 사상이라도 싸야 삽니다. 아니 그것은 반드시 싸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싸야 먹을 수 있고, 싸야 움직이고 노동할 수 있습니다.
싸야 소화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땀보다 과한 밥을 가져가는 이가 있듯이, 먹은 것보다 과하게 싸는 이도 있습니다. 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싸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남에게 독이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싸는 일은 가급적 남모르게 해야 합니다. sns가 자신의 변기인줄 아는 사람이 많고, 싸는 모습의 공개가 솔직한 것이라 아는 이도 많으니, 보는 눈이 부끄러워집니다. 쓰레기는 봉투에 담아 묶어서 소각되는 곳에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그것을 마구 날리면 살이 됩니다. 그런 살을 마구 날리는 이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것으로 제 밥을 짓는 이도 있습니다. 그들은 착취하는 이만큼 나쁩니다. 경계를 무너뜨리고, 혼란을 주고, 바름을 일그러뜨려서 착각하게 만들어, 착취를 용이하게 만듭니다. 올바르지 않은 언론이 그럴것입니다.

먹고 싸는 일이 이렇게 어렵고 과중합니다. 이것에 살고 죽는 일이 달려 있습니다. 이 시는 건강합니다. 더 명료하여 좋은 밥을 지으시길 바랍니다. 더 깊이 생각하면 더 명료해질 것입니다. 건강한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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