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중 / 목수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자주 만나진 것 같은 박상화선배의 시집 출간에 띄우는 발문

누구에게나 시심(詩心)은 있지요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있다 한들 온전히 한편의 시로 드러내는 것은 쉬이 될 일이 아닙니다.

시를 오랫동안 많이 써온 시인이라 해서 감수성이 폭죽처럼 터지고 공감능력이 용천수처럼 치솟아 올라서 일상의 언어가 시어라 문장하나 그냥 써내려 가면 그냥 한 편의 시가 되는 그런 시인은 없다고 확신합니다...어느 시인의 고백에서 갑자기 훅 써내려간 한 편의 시가 많은 이들에게 읽혀진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그 시인의 그 시 한편은 많은 일상들을 시 만을 생각해 왔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다 가끔 로또1등 당첨 될 확률로? 시를 많이 쓰게 되면 그런 시도 한편 써볼만 한데 박상화시인의 시는 단 한편도 쉽사리 쓰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해방글터의 특성상 흔히 말하는 투쟁시, 연대시 (혹자는 행사시라고도 하고 어느 시인은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쓴다고 숙제시라고도 하더군요.)를 자주 쓰고는 합니다만

한 순간 후~욱 하고 들어와 무겁게 담기는 시 한편이

뙤약볕 한 낮의 집회공간에서 마치 지금 옆에 앉아있는 듯

차디찬 겨울 농성장에서 서로의 등을 기댄 체온으로 밤을 보내본 듯

하지만 놀라운 건 아 이분 미국에 계시다고 했지.”

시의 현장성에 집중하자면 그 현장을 자주 가본 사람이

혹은 그 현장에 있는 사람과 자주 소통한 사람이

시의 현장성에 유리하리라 생각한 나는 틀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고쳐서 생각해보면 시의 현장성은 그 현장을 얼마나 오랫동안 고뇌하며 그 현장을 이해하려 하고 그 현장에 자신을 동질화 시키려 했느냐? 로 고쳐서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굶주린 개떼에게 사슴을 내주고 대화로 해결하라는 게 화쟁이냐,

개떼가 사슴을 결박해 끌고 가는 걸 배웅하는 게 화쟁이냐,

절간에서 피를 보지 않았으니 화쟁이냐,

 

조계사 개구리는 화쟁화쟁 운다 -부문-

 

해방글터를 만나고 여러 시인들 중 한 시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설픈 제 시에 다른 선배들 모두 스윽 읽기만 하고 지나가는 그런 시에 길고 긴 조언을 시평이라는 형태로 공들여 써주는 사람. 공들여서 써내려간 시평들이 무서워서 한동안 시를 올리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질타와 비판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막내시인에게는 질타와 비판보다 더 무서운 시평과 조언들..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노? 부담스러운 사람. 그냥 다른 선배들처럼 깜냥도 안 되는 시라면 그냥 사뿐히 즈려밟아주면 될 것을 함부로 쓴 시를 함부로 다루지 않아서 더 무서운 사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를 아끼지 않는 사람.

시를 쓴다는 것이 특히나 마음을 올곧게 드러낼 수 있는 편지를 쓴다는 것은

그런 그의 감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스타케미칼 굴뚝위의 차광호 동지에게

 

어두운 밤 허공에 흰 꽃잎 몇 날 피었네

가지도 없네

꽃을 피우느라 어두워진 가지

그게 봄이지

 

가지여 한 잔 받으시게

흰 꽃잎 봄밤의 정취인줄 알았더니

그대 마른 몸

말없이 술잔을 채우게 하네

 

2015. 03. 25 - 박상화 -

 

春酌 (춘작) 전문

 

박상화선배의 시 중 딱 한편을 골라 대독 해보라 하면

오랜 시간 지병을 앓다가 고달픈 세상 먼저 훌쩍 떠나버린

빈민운동을 알려준 선배이자 형의 추모시를 떠올려보기도 했고

저희 부부의 결혼소식에 써주신 축시를 떠올려 보기도 했고

신경현선배의 결혼식에 제가 대독한 시를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뭐든 진득하게 하지를 못해서 떠돌이생활을 해온 제가 제일 오래(그나마 3년하고 조금)살았던

강정마을을 생각한 시를 떠올려보기도 했습니다만

여기서 제가 소개드리고자 하는 시는

선배의 원고를 받고 모든 시를 한 편 한편 다 읽어보고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시

 

시인 박상화의 시가 투쟁이나 연대로만 표현 될까하는 두려움을 단 한편으로 떨쳐내게 해준 시

시인 박상화의 시는 아주아주 다채로운 정체성을 가진 시라고 명확하게 알릴 수 있는 시

박상화선배가 처음 써본 동시를 소개합니다.

 

햇니

 

햇살도 조그만 이가 있어

마루 끝에 걸터앉아

차가운 봄을 조금씩 갉아 먹고

무럭무럭

여름이 된대요

 

2016. 03.05 -박상화-

*처음 써본 동시

 

햇니 전문

 

동인 선배가 시집을 낸다하니 시샘이 납니다.

시샘이 나는 건 되는 데 샘낸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저도 언젠가는 시집 한권은 낼 수있으려나요?

죽어서야 유고시집이 나오려나?

그냥 나도 잘하고 싶은데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꼬나봅니다. 노려봅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자주 만나진 것 같은 박상화선배의 시집 출간에 띄우는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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