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중 / 목수


마음이 헛헛하여 글쎄 왜 인지는 모르나 혹은 왜 인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나

이민중 2 1,218

마음이 헛헛하여 글쎄 왜 인지는 모르나

혹은 왜 인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나

 

이 민중

 

나에게 뭐라 하는 이가 있어도 제대로 들리지 않고

혹은 들었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바위에 부서진 포말처럼 눈에 보인다 하여

정형화할 수 없는 언어들로

 

바다가 해를 삼킬 때 구름에 투영한 해처럼

시뻘건 생각들이 머릿속에 꽉 차 있으나

구름속의 물방울입자개체수를 셀 수 없듯

몇 개의 생각인지 또는 어떠한 생각인지

구름처럼 무게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 하여 사물이라 할 수 없는

움직이는 것이라 하여 생물이라 할 수 없는

정오의 햇살에 파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반짝이는 윤슬을 보았다 하여

보이는 것을 소리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알량한 단어 몇으로 쓰기에는

인간의 언어가 너무나 부족한 탓이다

 

허한 마음에 몸을 바삐 움직이면

허한 마음 가실까 하여 몸을 바삐 움직여본다

 

거실도 쓸고. 닦고, 부엌도 쓸고. 닦고

설거지도 하고, 음식물쓰레기도 비우고

 

당장에 내일 갈아입을 양말과 속옷도 없을 만큼

바삐 살아온 건 아닌데...게으르고 나태한 나의 삶이

오늘 밤이 되어서야 세탁기에 빨랫감들을 넣었다

 

밥솥에 잡곡밥을 앉혀놓고, 진한 커피도 한잔 마셔본다

 

쓰레기종량제봉투와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려

마을아랫길 클린하우스로 터벅터벅 걸어가다

담배한대 물고서는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십분만 걸으면 마을포구로 내려갈 수 있을 터

검은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이면 시커먼 속이 조금 밝게 비춰질까 하여

등대불빛비친 검푸른 바다 파도소리라면 내 속에 무슨 소리라도 들릴까 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밥솥은 제 할 일을 다 해놓았고,

세탁기도 제 할 일을 다 해놓았으니

제 앞가림도 못하는 자신이 더 비참해졌다

 

고양이의 사료와 간식을 챙겨주고 나서야

나도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냉장고에 남아있던 채소들 몇 가지와

조금 남은 돼지고기로 요리를 한다

정성스레 몇 가지 양념을 더해가며

무엇이 되었든 정성을 쏟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든 어떤 대상이든 관계없이

 

요리는 요리하는 사람을 닮는다

삼십대가 된 후로 평소에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지 않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맥주 한 캔으로 안주삼아 먹었을 때

자극의 쾌락과 그런 자극들의 중독성에 빠진 십대후반의 나를 만났다

 

허한 마음 시를 읽을까 하여 시집을 펼쳐들었으나 눈에 들어오질 않고,

행여나 시를 옮겨 쓰면 조금 덜 할까싶어 펜을 들었으나 손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

 

지금 나의 마음을 글로 옮겨보려니

새까만 정육면체가 떠올랐다.

빛조차 반사되지 않는, 아니 빛마저도 빨아들일 것 같은

거친 표면에 여섯 면이 꽉 막힌, 꽤나 무거워서 들 수도 없을 것 같은

어느 면이라 할 것 없이 모든 면의 면적이 같아서

아래. , . , . 뒤를 적어 놓지 않아 정의 할 수없는

 

또 하나 떠오른 것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마치 불에 탄 재처럼 새하얀 뼈대만 남은 정육면체

모든 면이 뻥 뚫려있어 뼈대조차 없으면 그 형체는 무()가 될 듯한

정육면체라는 형태는 있으나 소리도 공기도 빛도 모두가 지나다닐 수 있는

그러한 내 마음이리라 생각했다

 

왜 인지는 모르나 혹은 왜 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으나

모든 걸 정의하지 않기로 하고

살아가면서 작은 퍼즐조각 하나씩 차츰차츰 조금씩 맞춰보기로 하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현실을 애써 외면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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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신경현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 혹은 자기 감정을 길게 분석한 듯한 것은 그동안 민중 동지가 써왔던 시 편 들 중에 진일보한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다만 이야기가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서 자신의 맘을 혹은 시를 완성하도록 더 노력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시에 대한 열정이 차고 넘치는 민중 동지의 열정에 격한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조성웅
하루 종일이 시구나 ㅎ
시적인 상태를 잘 유지한다면 곧 이민중이라는 아주 독특한 시인이 태어날 것 같은 예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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