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중 / 목수


소리 내지 않은 풀꽃은 제 각각의 꽃을 틔우고

이민중 1 1,142

소리 내지 않은 풀꽃은 제 각각의 꽃을 틔우고

 

이 민중

 

소리 내지 않고 살아있는 풀꽃들 위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죽은 말이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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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풀꽃은 아무소리도 없이 꽃을 틔웁니다. 실질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요,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음으로써 영역을 넓히고 뿌리를 굵게 하니, 행동으로써 제 원하는 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련의 진행에 말은 필요가 없습니다. 간혹 짓밟히더라도 오직 행동이지요.
사람들의 죽은 말이 오간다는 건 말이 일의 진행에 도움이 안된다는 성찰입니다. 행동은 없고 말만 있다는 것이지요.

아래는 이 시를 두고 퇴고를 한다면 어떻게 진행될까를 생각하여 쓴 글입니다. 원래 남의 시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거 좋아하질 않는데, 이렇게 하라는게 아니라 퇴고를 이렇게 하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썼으니, 후룩 읽어보고 참고나 하면 되겟습니다.

-아 래 -

시의 본문보다 제목에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실렸습니다.

본문에 '살아있는'이 두번 강조되었는데, 두개의 '살아있는'을 빼도 의미는 그대로 성립합니다.
'소리내지 않는'이 제목에도 씌이고 본문에도 씌여 두번 강조되었는데, 둘중에 하나를 빼도 무방하리란 생각입니다.
'제 각각'은 이 문장에서는 '역전앞'처럼 동의반복입니다.
이 시에서는 꽃을 피우는 풀이 단수냐 복수냐에 차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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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은 제 꽃을 틔우고
 
이 민중
 
소리 내지 않는 풀꽃들 위로
사람들의 죽은 말이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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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죽은 말에 대비되는 '풀이 꽃을 틔운다'는 실질입니다. 
그래서 1연과 제목을 바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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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지 않는 풀꽃들 위로
 
이 민중
 
풀꽃은 제 꽃을 틔우고
사람들의 죽은 말이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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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사를 맞춰 리듬감을 줍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꽃을 튀우는 것은 풀이기 떄문에 꽃의 반복을 없애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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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지 않는 풀꽃들 위로
 
이 민중
 
풀은 제 꽃을 틔우고
사람들은 죽은 말로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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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은 원래 소리나 말이 없고, 본문에 내용이 집중되어 잇으므로, 제목을 정리합니다.
소리 내지 않는 풀꽃들 위로 -> 풀꽃들 위로
풀꽃에 대한 묘사가 시제가 아니니까 제목을 바꿉니다.
소리 내지 않는 풀꽃들 위로 -> 풀꽃들 위로 -> 꽃과 말
꽃은 석가모니 부처께서 제자에게 말대신 꽃을 들어 보이자, 수제자 가섭이 그 뜻을 알아듣고 빙그레 미소로 화답했다는 고사로부터 "침묵의 말"을 의미하는 단어로 많이 씌입니다. 이 시에서 죽은 말은 소리나 잡음으로 이해되어도 좋지만, 소리나 잡음보다는 쓸모없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에 말이 더 상징성잇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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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말
 
이 민중
 
풀은 제 꽃을 틔우고
사람들은 죽은 말로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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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여기서 단어의 순서를 뒤집는 것을 굉장히 시적인 표현이라 하는 사람들이 잇는데, 저는 분명한 의미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기법이 중첩의 뜻을 가지고 생각하게 하는 효과는 있어서 시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자주 써먹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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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말
 
이 민중
 
꽃이 풀을 기르는 동안
사람들은 죽은 말로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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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면, 보통은 풀이 꽃을 튀우지만, 생각해보면 꽃(목적)이 풀을 기르는 것이기도 하다는 데 수긍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퇴고의 방법은 의미를 좀 더 정확히 전달하고자 하는 데 주안점을 둔 퇴고의 방법입니다.
더 명료한 표현을 찾아 고치고 고쳐보는 것인데, 고친 그 끝을 최초의 시와 대비해 보면 더 낫다고 할 수도 있고, 더 못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반복되더라도 쉽고 강조하는 걸 좋아하는 독자는 첫시가 더 좋다고 할 수 있고,
짧고 명료한 걸 좋아하는 독자는 퇴고본을 좋아할 수도 잇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어떤 시는 짧고 명료하게 던질 필요가 있고, 어떤 시는 길고 강조해서 써야할 경우가 있습니다.

앞으로 퇴고할 때 한번쯤 생각해 보길 바라서 이렇게 썼으니, 화내지 마시고 이렇게 할 수도 잇겠구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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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미소는 진리는 말로 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불립문자, 이심전심이라고도 합니다.
이 시에서는 풀들이 말없이 제 일을 행하는 것을 눈여겨 보았고,
말만 많고 행동은 없는 사람들은 살아잇다고 하지만 죽은 것이다라는 성찰을 합니다.
이렇게 짧은 시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강렬할 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모든 내용이 시에 담겨야 합니다.

이 시에서는 '죽은 말'이 요점입니다. 설피보면 사람의 말은 아무 소용없는 것처럼 보기 쉽습니다. 꽃도 못 피우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의 말은 매우 중요한 소통의 기능을 담당하고 잇기 때문에, 꽃보다 중요한 일을 할 수도 잇습니다. 그럼 죽은 말은 무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데, 이 시에서는 그 것을 알려주지 않고 잇습니다. 지금의 정세나 상황을 두고 보자면 이해할 수 있는 시지만, 몇년 후에 누군가 다시 본다면 '죽은 말'이 뭔지, 이해할 수 없는 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시인들은 그 정세를 참고하라고 시 안에 날짜를 남기기도 합니다. 시 하나에 모든 스토리와 모든 상황이 다 담겨야 하는 것은 이러한 까닭입니다. 시가 독립적으로 살아 남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이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쓸데 없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굳이 따지지 않아도 이해불능은 아니겠으나, 사람의 삶은 '산 말'과 '죽은 말' 사이에서 떠도는 것이므로 '말'이 무슨 말인가를 늘 고민하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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