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중 / 목수


다시 광장으로 나가면서 – 편지 -

이민중 2 913

다시 광장으로 나가면서 편지 -

 

이 민중

 

그 때 그날 처음 나가보았던 광장은 정말 기분 좋았어요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보니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았어요

 

노래 부르고, 구호도 외치고, 춤을 추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났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그 속에 한사람이라서

마치 뭐 대단한 거라도 한 거 마냥 뿌듯했어요

 

미안해요...그리고 고마워요

완전무장한 경찰들의 위압적인 군홧발소리와

방어용이 아닌 공격용이 되어버린 방패가 무서워서

제 앞에서, 제 옆에서 맞서는 당신들을 뒤로 하고 저 혼자 집으로 도망쳤어요

 

오늘 저는 또 다시 광장으로 나갈 꺼예요.

두려움도 있지만 당신들이 좋거든요. 또 만나요

도망가서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도망가지 않고 옆에 서 있을 꺼예요

 

저와 같이 어떠한 계기로 처음으로 광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제가 광장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의 이야기

작게라도 그 광장을 지켜오며 큰 모임을 준비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계속 듣고 싶어요

 

아직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하기는 조금 망설여지지만

그렇게 세 번, 네 번이고 더 만나서 눈인사라도 나누게되면

자그마하게 라도 모여요. 그 때는 제 이야기도 들려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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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2008년 초 미친소수입반대 촛불에 몇 번 정도 나갔을 때

집에 들어오자마자 쓴 편지를 이제야 고쳤어요.

버릴까?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 때 무서워서 도망간 마음이라도

기록으로 남겨야 겠다 싶어서,

최초로 한 결의와 약속의 기록이라서 지우지 않고 있었지요

몇 일전에 참으로 오랜만에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촛불집회가 있었는데

그동안 들어왔던 운동권용어나 사회과학지식들이 나열된 발언들이 아닌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인사들의 의식검열 된 발언, 사상검열 된 발언들이 아닌

일상생활의 감정표출들이 연이어지는 촛불집회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그 때의 감정이 다시금 떠올라서 그 때 쓴 글을 다시금 정리해봤어요.

어느새 저도 제 자신의 발언을 검열하게 되고, 학습된 내용들만 떠들고 있다고 반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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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편지를 차분히 잘 썼네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 이것은 보통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광장의 이미지고, 사람들의 광장은 지금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거의 시장이 되었지요. 광장에서 여러가지 목소리를 만나도 모두 제 잇속이 있는 시장과 다름이 없게 되었어요. 광장이 광장이려면 여러가지 목소리가 서로 들어주고 주장하고 합치해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할텐데, 모두가 자기 주장만 하고 끝나니 광장이 아니라 시장이 아닐까 싶네요. 시작노트를 보면 광우병 촛불집회때 이야기인데, 이 때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던가요? 여기서 얘기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다양한 구호라면 시의 흐름과 맞지 않을 것이고, 그때 그 광장에 광우병소 수입 반대 말고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었는지는 제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표현의 작은 부분이 전체 내용을 뒤집어버릴 수도 있으니, 정확히 해 주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방어용이 아닌 공격용이 되어버린 방패가 무서워서 : "방어용이 아닌"을 빼고 읽어도 말이 되는데, 설명이 더 필요했던 걸까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편지니까 더 필요하다고 느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설명이 많으면 긴장감은 그만큼 떨어지게 됩니다. 편지니까 긴장감이 높을 필요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시뿐만 아니라 모든 문장은 가급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집중에 도움이 됩니다.

보통의 시인들은 광장의 의미를 파헤치는데만 집중하게 마련인데, 광장을 처음 나간 경험, 도망친 기억, 다시 나가는 각오, 소망들이 잘 어우러져 써졌습니다. 1.2.3.4연의 흐름이 부드럽고, 자연스럽습니다. 서두를 시작하고 전개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독자가 자연스레 끌려가도록 쓰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연도 적절히 잘 나누어 졌구요. 5.6연은 약간 의욕이 넘쳐 보이는데, 앞 연들보다 그렇다는 얘기지, 지나친건 아닙니다.

연애를 하면 무척 고수일 것 같은 편지를 봅니다. 좀 더 세부적인 광장의 이야기들도 있을 텐데요, 줌을 좀 더 당겨서 써도 잘 쓸 것 같습니다. 이야기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자꾸 메모하시기 바랍니다. 예리한 감각과 정의로운 정서를 지녔는데, 다작을 안하는게 문제인것 같습니다. 이건 목공작업할 때 연장하고 같아서, 좋은 연장을 갖고 자주 사용하면서 숙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작업과 똑같이 하루에 한편씩 써야 합니다. 우선은 숙련, 그리고 나서 느낌이 오면 지금과는 연장을 사용하는 기술이 달라집니다.
조성웅
무서워서 도망간 마음이 작고 동그란 광장에서 '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이것이 사실은 "시"야. 새로운 삶인 거지. 이 새로운 삶은 개성적일 때 가장 아름다워. 누구를 닮은 것이 아니라 이민중 이 한 사람으로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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