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현 / 1973년생 / 공공운수노조 대경지부 조직부장
경대병원 주차관리 비정규직 노동자
하느님,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무슨 잘못을 했다고
길거리로 쫓겨났을까요, 우리는
들어줄 이 하나 없는
이 중얼거림이
쓸쓸 해 그만두기로 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지친 예수를 향해
채찍질을 하는 로마의 군병처럼
무관심을 쏟아붓는 엄동설한의 찬바람을
바람막 하나 없이 맞아야 했다
우리 이야기 좀 들어보라고
흔들리는 촛불하나 들고 집회를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병원은 아무 말이 없다
국립대 병원 주차관리 비정규직 노동자
지금은,
해고된 국립대 병원 주차관리 비정규직 노동자
별 설명이 없어도 이제는 너무나 흔한 이름
별별 설명을 하더라도 좀체 이해할 수 없는 이름
비정기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는 이상
정기적 고정적으로 날아오는 슬픔과 눈물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압권입니다. 비정규직들은 이제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배고픔이나, 잠같은 생리적 현상들까지도 비정기적인 것으로 바꾸어야 하는가..
팔년만에 돌아온 탕자인 나로서는 가장 놀라운 사건이 구제할 길 없었던 신경현이 시인이 된것이었다.
'형님, 하아 씨바.. 도대체 시는 어떻게 쓰는 겁니꺼?"라던.
눈 내리깐 색시 앉아서 수놓는 거 같은 시는 모르겠고, 두터운 손가락 손톱은 채 빠지지 못한 기름때를 둘렀다. 집회에서 치고 박다가 동길이가 다치자, 육두문자를 써가며 더 밀어 붙이지 못해 씩씩대던, 힘이 남아 돌아 멧돼지 같은 친구였다.
재촉에, 어쩌다 한 편 내는 시는 도끼자루를 휘둘러 장작을 팬 듯 하였지만, 장작을 패라면 막대기로라도 열심히는 패던 경현이였다.
그래도 경현이는 달밤을 부르짖는 꺽정이 같이 살거라 생각했었다. 대구시내 집회란 집회는 다 쫒아다니며 맨 앞에서 용력껏 아작을 내고도 부족해서 씩씩거리던 친구였기에, 야인체질이라 시는 안맞을 거라 생각했었다. 많이 쓰고 많이 읽고 많이 베껴야 조금씩 늘텐데, 영 읽는 것과는 멀어보였고 쓰는 것도 강건너였고 베끼는 것도 안하는 눈치였다. 선남이 형이 붙잡아 놓고 가르친다고 하였지만, 다들 바쁜 몸들이라 그럴 시간이 주어졌는지도 의문이었다.
오랜만에 보니, 지리산정의 고사목처럼 말라 그새 시집을 세권이나 냈다고 하고, 그 시 속에 깊고 깊은 성찰의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본 것은, 정말 경이 그 자체였다. 옆에 있으면, 이걸 정말 정말 정말 네가 썼냐고 거듭거듭 묻고 비명을 지를 것 같은 느낌이었다.
15살에 윤동주, 조지훈으로부터 사모한 나의 시력은 올해로 얼추 34년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시를 배우지 못해 이것저것 남루한 살림에 고물주워 모으듯 하는 내게, 경현이의 시는 시의 시작이 많은 독서와 오랜 습작과 베껴쓰기가 아님을 일깨워 주었다. 어려서부터 근육에 새겨온 절박하고 절박했던 모든 시가 어느 순간 넘치는 절박함을 타고 펜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리라. 숨쉬는 증거로 이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초인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듯이, 불과 팔년만에 시집 세권을 내고, 성찰의 시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팔년 이전에도 오랜시간 경현이는 시를 써 왔을 것이지만, 그 사이에 경현이는 열심으로 담벼락을 하나 넘은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넘어보나 싶은 그 담벼락을.
이제 신경현 시인의 눈에 비정규직은 먹고, 싸는 원초적 문제까지도 정기를 포기하고 비정기로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진화시켜야 하는 지점에 도달하였다. 낙타가 사막을 건너기 위해 한번 먹고 오래 안 먹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체화시켰듯이, 비정규직도 등에 혹을 하나씩 달고 저장하였다가 일거리가 끊기면 되새김질을 하며 너른 사막을 건너야 한다. 처참하다. 단결투쟁이 아니라, 일체의 외부적 연대가 끊기고 오로지 홀로 살아 남기 위해 해야 하는 진화에 직면한 것이다. 처참하다.
그러나 아직은 진화 되지 않았다. 하여,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슬픔과 눈물이 괴롭다. 비정기적인 일거리조차 넉넉히 저장할 만큼이 되지 못함도 사실이다. 그리고도 사막은 건너야 한다. 흔들리는 촛불처럼 애원하지만, 병원은 비정규직이 아니므로, 흔들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불규칙적인 생리현상을 수렴하도록 진화를 요구하는 주체가 아이러니하게도 병원이다.
"비정기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는 이상"
진화가 요구되도록 비정규직의 문제는 막다른 골목이다. 빙하기다. 살아 남기 위해서라면 친구도 뜯어 먹어야 하는 절박한 지경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 문제를 바로잡고자 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 중얼거림이/ 쓸쓸해 그만 두기로 했다"
집회와 시위로 요청으로 애원으로 이 어설픈 투쟁으로는 문제는 바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진화가 이루어 지기 전까지는.
어떻게 진화를 이룰 것인가.
경현이의 시에는 세상의 쪼개진 틈을 보는 예리한 시선 뒤에 우울과 허무가 묻어있다. 이 우울과 허무는 그러나, 가라 앉자는 체념이 아니라, 일어나자는 안간힘이다. 가위에 눌렸을 때 깨어 나고자 하는 생각인데, 일반적인 경우처럼 버둥거리지 않고 차분하다. 그러다 보니 일어나자는 시인의 말은 무척 어눌한데, 이 어눌함으로 마음에 가 박히고, 마음을 끌고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눈치다. 직선적이고 명
료한 주장에서 길을 찾지 못해 어눌함에서 길을 찾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경현이는 또 하나의 담을 넘는데에 서 있는 것 같고, 잘 넘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