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하얀 바람이 세상을 꽁꽁 얼리고
문밖을 나서는 것 만으로도
코끝 에는 저녁
창고에 쌓아두었던
감자 세 알과
무 반쪽으로 차려진
저녁 밥상
참기름과 북어국을 보태어
아내와 아이들은
해맑게 밥을 비비며
함께할 것을 청하는데
어린 날
겨울 들판을 따라 온종일 떠돌아
씀바귀뿌리 캐어 오시던
어머니
해가 지고서야 언덕의 그림자로 나타나
콩닥이던 아들의 마음을 쓰다듬고
술 취해 잠든 지아비 깰까
밥상도 없이
부엌 한 켠에서 숨죽이고 먹던
비빔밥
신 씀바귀김치 몇 조각과 까슬한 밥알들
마른 목줄기를 타고 넘던
차가운 비빔밥
온 식구들 그릇 하나로
행복하게 비벼진 저녁 밥상에
홀로 밥그릇 챙겨 들고
추억을 먹으며 떠오르는 사람
오늘도 홀로
밥 비비고 계신 건 아닌지
보테어->보태어
"술 취해 잠든 지아비 깰까/밥상도 없이/부엌 한 켠에서 숨죽이고 먹던/ 비빔밥"에서 눈물이 그렁해졌습니다. 오늘의 밥을 두고 옛날의 밥을 끌어낸 힘이 좋습니다. 이 부분은 절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