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음주 그 후

붕어 4 1,170

​정신줄을 놓은 날

눈살 찌푸리는 비린내가

두엄 가 구더기 껍질 속까지

파고들었고,

말이 가벼워진 날

후두둑 찢어진 내가

밭가에 버려진 비닐처럼

닥나무 가지 끝에 걸려

바람에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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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신경현
시제를 너무 평범하게 잡은건 아닌가?? 술 먹고 난 다음, 혹은 그 다음날의 생각들 그리고 그 생각들이 불러일으키는 단상들을 너무 단선적으로 그려낸것 같네ㅠ 그리고 '정신줄을 놓은 날'보다 '정신줄 놓은 날'로 해도 더 리듬이 살아나는것 같은데..말이 가벼워졌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와 뒤이어 왜 작자가 찢어진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네..짧은 시일 수록 더욱 긴장감을 불어넣으면 더 좋은 작품이 탄생할 듯 싶다..추석 끝나고 한층 더 깊은 마음으로 시를 쓰고 삶을 쓰자..규동이, 화이팅
붕어
^^ 고맙~!
내가 술 먹으면 말이 많아 지잖아....ㅎ
다시 살펴봐야지.
박상화
술을 많이 마시고 나면 코가 예민해 집니다. 계속 비릿함이 몰려오고, 몸은 안 움직이고, 존재가 마치 바람에 날리는 찢어진 파지나 비닐같이 느껴집니다. 술이 들어가면서 몸안에 있던 열정, 참음이 발산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몸을 항아리라고 하면 이 몸을 지탱하는 건 항아리 안에 담긴 내용물입니다. 내용물이 있음으로써 쓸모를 확인하고, 버티고 선 이유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용물이 없으면 빈항아리죠. 무엇때문에 버티고 서 있는지, 무슨 쓸모인지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침묵은 존재를 버티게 하는 접착제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고, 말을 많이 쏟아낸 다음에는 공허해지고 부끄럽기도 하고 존재가 부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무 참으면 병된다고 너무 발산을 하지 않으면 이 항아리는 버티기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이 시는 그런 존재적 상태를 표현한 것인데, 상태만 표현해서 심심해졌습니다. 상태에 이야기가 더해지던지, 이 인식을 다른 시를 쓸 때 써먹는 방법으로 하면 시가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 김영승 ‘반성 16’

이 시는 술을 마신 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재미 있습니다.


+ 밥그릇

밥하던 아내가
포개진 밥그릇이 빠지지 않아
나에게 들고 왔다
한 그릇에 조금 작은 그릇이 꼭 끼어있다

그릇이 그릇을 품고 있다
내 안에 있는 당신의 아픔
당최, 힘주어 당겨도 꼼짝하지 않는다
물기에 젖어 안으로 깊어진 마음
오늘은 저리 꼭 맞았나보다

한번쯤 나는 등뒤에서 너를 안아보고 싶었다네

선반 위,
씻긴 두 개의 밥그릇이
봉분처럼 나란하다
(고영민·시인, 1958-)

이 시는 상태를 묘사했지만, 역시 이야기가 들었습니다.

왜 라는 질문에 사는게 다 그렇지 뭐 라고 대답하면 시가 싱거워 집니다. 의뭉스러운 대답도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이 시의 표현은 아주 좋은데, 그 앞뒤의 이야기가 필요해보입니다. 사회적 고찰이든, 존재의 성찰이든, 개인적 서사든, 아니면 만취에 대한 비유이든지 간에요.

누구나 술을 마시고, 만취하기도 하지만, 만취 후의 이야기에 대해 무릎을 칠 시를 쓴 사람은 아직 못봤습니다. 주선 이태백도 술마시는 호방한 이유나 풍경은 그렷어도, 만취후의 심상을 묘사한 시는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고은선생님 정도면 혹시 한편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제가 읽어본 시가 너무 없어서 예를 들 수가 없네요. 늘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아무도 안쓴 소재에 대한 연구도 좋을 것입니다.
붕어
시마다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돌아보고 살피며 단단해지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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