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늦은 가을
게으른 농부의 손으로 뿌렸던
시금치 씨앗은
겨울 앞에 시금치 잎을 내밀었다
해거름 추녀 끝으로 참새가 들어가면
새벽 그곳에선 참새가 나온다
대나무 숲에 바람이 걸리면
댓바람 소리가 나고
소나무 숲에 바람이 걸리면
솔바람 소리가 난다
아랫집 여덟 살 한북이에게 물어봐도 안다
이땅에 사는 것들은 그렇다
똥 싸고 구린 놈이
지한테 나는 냄새 아니라 하면
내 것 다 빼앗가 가놓고
지가 빼앗은 거 아니라 하면
멀쩡한 생목숨들 다 죽여놓고
지가 죽인 거 아니라하면
마당가 백구도 안다
그런 놈들은
이 땅에 살면 안된다는 것을.
박정희 자서전 이름이 '내 인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였고, 마더 테레사도 종교의 전파를 위해 힘없는 인도인들을 이용했다는 평가를 하는 이가 있습니다.
어떤 거짓말은 친구를 위해 증언되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최소한 친구에게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유다가 예수를 모른다고 거짓말한 것은 예수에겐 거짓이지만, 유다 본인의 목숨에게는 정직했던 것과 같습니다.
박유하 교수가 역사를 보는 관점은 본인과 일본인들이 볼 때는 정직한 것이지만, 위안부할머니들이 볼 때는 정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제가 해 놓고 안그런척 합니다. 나무도 그늘을 만들어 경쟁나무를 못살게 해 놓고 아닌보살하고 돌아 앉습니다.
그러니 정직을 인과율로만 설명하려하고 객관적 대상과 상황이 명시되지 않으면 추상적인 글이 됩니다. 철학과 윤리적 개념들이 대개 이렇습니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제목을 정직으로 붙이지 않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정도로 했다면 조금은 더 명료한 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개념들은 반드시 구체적인 삶의 사건을 만나야 힘을 얻습니다. 정직, 성실, 앎, 부드러움, 딱딱함, 예의바름.. 이런 단어들이 모두 그러합니다. 어떤 사건을 함께 서술해야 합니다. 그 사건은 12행까지 서술된 내용들이 아니라 6하원칙에 의거해서 일어난 실제적 사건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쓰면 시가 훨씬 더 재미있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