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어느 산에선가 한 자리 지켰을 만한
매끈한 굴피나무 토막 하나
그놈 한 덩이면
구들방 따숩게 채울 것 같아
도끼를 휘둘러 보는데
힘을 써도 꿈쩍 않는다.
깊은 곳에서 사내의 오기가 올라와
내가 쓰러지나 니가 쪼개지나
열을 낸지 한참
도끼날을 퉁퉁 밀어내던 놈이
힘이 빠진 듯 제 속을 비추는데
불쑥 불쑥 고개를 쳐드는
검은 옹이들.
저 아픔을 감싸보려고
속살을 찌르는 아픔을 견디며
평온한 듯 굴피를 두르고
단단해졌구나.
단단해지는 것은
아픔을 견디려
아픔을 품는 것이구나
숲 속 나무들이
그렇게 단단해지는 것이구나
어느 산에선가 왔을
굴피나무 한 토막 패고
마당 너머 숲을 바라보는 오후.
사례를 첨가하기가 싫다면 시행만 좀 더 압축해 보시기 바랍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이말 이말이 들어가야만 시의 상황을 독자가 이해할 것 같지만, 줄여도 상황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독자의 눈으로 읽어보시고, 눈에 먼저 밟히는 단어들을 골라내서 그 단어들 중심으로 나머지를 가지치기 해 나가다 보면 줄여집니다. 이럴때, 이렇게 까지 줄이면 이걸 이해할까, 차라리 이해하기 쉽게 풀어 스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부딪히는데, 풀어쓰면 긴장감이 늘어져서 감흥이 덜해집니다. 어려워도 줄이면, 독자는 시를 읽고 무릎을 치는 맛이 생깁니다. 이해와 설명의 그 미묘한 경계를 잘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한 예를 들면, "어느 산에선가 한 자리 지켰을 만한"이나 "어느 산에선가 왔을"같은 설명은 이미 '장작의 대상이 되는 굴피나무'란 단어 속에 들어 있는 말이고, 그 굵기도 장작으로 쓰려고 패고 있으니 짐작할 수 잇는 것입니다. 그런 말들, 다른 설명을 이미 품고 있는 말들을 잘라내고 다시 읽어 보시면 어떨까도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