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눈보라 속을 걸으며

붕어 3 1,204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겨울은 세상을 덮치고

바람도 거칠게 치밀어

어둠 속의 길은 매섭다

 

두려움을 이겨내듯

드문드문 서있는 가로등은

텅 빈 길을 확인시켜줄 뿐

 

홀로 선다는 건

눈보라를 맞는 것이다

 

겨울밤

맨몸으로 선 느티나무 아래서

무엇을 잘못 했는지

누구를 아프게 했는지

세상으로 그어놓은 생채기는

또 얼마나 많은지

뒤따라온 발자국마다

또렷이 드러나는 흔적을 보며

유난히 화가 난 솔바람에게

두 볼 다 내어주고

 

다시

홀로 선다는 건

 

따뜻한 사람의 체온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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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잠시 한눈을 팔면 세상은 금새 매정해지고 차가워 집니다. 나의 시련이 혹 내가 누군가에게 준 시련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고, 다시 따듯한 사람의 체온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시인의 마음이 참합니다. 아래 황지우 시인의 시<눈보라>가 생각났습니다.

원효사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숲을 상봉으로 데려가 버린다

눈보라여, 오류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 데 아주아주 추운데를 나에게 남기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사람소리가 짐승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왜 광기인가

뺨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죄 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가

가면 뒤에 있는 길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앞에 꼭 한 길이 있었고 벼랑으로 가는 길도 있음을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 황지우 시집  < 게눈 속의 연꽃 >, 문학과지성사

시적 기술만 잠깐 말하자면, 붕어님은 눈보라를 뚫고 가며 잠시 생각나진 것을 정리해서 읊는 반면, 기성 시인은 이때 저때 생각난 것을 메모했다가 시를 쓸 때 합쳐서 정리를 합니다. 한 순간의 감흥과 여러순간의 감흥의 차이입니다. 한 순간의 감흥을 한편의 시라고 하면, 기성 시인의 시 한편은 사실 여러편의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냥 기술적인 문제인데, 그럼으로서 한연한연이 시적 감흥으로 가득한 효과를 볼 수 잇습니다. 떠오르는 시상을 적어 놓았다가 시를 쓸 때 합쳐보시면, 황지우 시인의 눈보라 처럼 한연한연이 살아있는 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총체적인 편집의 묘는 따로 고민을 하셔야 할 일입니다.
신경현
'홀로 선다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홀로 선다는 게' 왜 '눈보라를 맞는 것인지?가 드러나지 않네...크게 보면 이 시를 쓴 시인의 의도는 알겠으나 시인의 의도가 너무 상투적인 표현으로 채워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4연에서 드러나는 시인의 회한의 모습들이 어찌보면 장삼이사들의 보편적인 모습을 설명(표현)은 하고 있지만 그 보편적인 설명(표현)만으론 시인의 내면과 삶의 회한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네..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았을 감정의 단편들을 어떻게 한 편의 시에서 녹여내고 재 구성할 것인가하는 상화형님의 지적도 정확한 것 같고..뭐 나도 그런거 잘 못하지만 친구야, 니는 더 잘 할 수 있을끼다..화이팅^^
붕어
^----------^;; 한 번씩 들어 오면 정신이 없네....정신차리고 열심히 배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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