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닭 우는 소리

붕어 3 1,478

긴 어둠 같은 세월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날이 바뀐 새벽

열 두 시 반

잠 못 이룬 장닭 한 마리

우렁차게 아침을 불러

이른 잠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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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시를 쓰다보면 사물에 자신을 이입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컵의 빈 속성을 이용해서 컵은 제 자신을 비우고 채웠다거나, 담배가 제 속을 태웠다거나, 연탄이 남을 위하여 제 몸을 불태웠다거나, 전화벨소리가 울리는 것을 어둠속에 내가 너를 부르는 소리로 가득찼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주변 사물의 속성을 관찰하다보면 필시 이런 표현에 이르게 되고, 이런 표현으로 시를 쓰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가가 만족하면, 독자도 시를 읽고 아! 이런 표현도 가능하구나 하는 정도로 스쳐지나가게 됩니다. 요즘 유행한다는 인터넷시가 이런 기발함을 기반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시각의 확장이므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의 삶은 이런 깨달음이 축적되고 축적되어 탑을 쌓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의 깨달음은 문득 깨닫고 잊고 또 다른 깨달음을 얻고 또 살아갑니다. 기억이란 본래 저장하고 꺼내어 쓰는 것이므로 지금의 시야에 필요하지 않은 깨달음은 묻어두게 됩니다. 그것은 지식을 얻고 저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식은 배우고 익혔지만 필요하지 않으면 잊게 됩니다. 혹시 달달 외웠던 근의 공식이나 주기율표, 병인양요가 발생한 년도같은 것들을 기억하시나요? 지식과 같이 깨달음도 하나의 기억입니다. 현재의 필요에 의해 발생하고 사라집니다.

이 기발함에 멈춰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는 울림이 되어야 하는데, 울림이 되려면 깨달음이 삶을 만나야 합니다. 시를 읽은 독자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을 울림이라고 합니다.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두고 고민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기율표처럼 외우고 시험보고나면 안쓰는 지식이 아니라, 덧셈 뺄셈처럼 살아가는 동안 계속 가지고 가면서 써먹을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이 이렇게 기초지식을 기반으로 보태나가 전문지식이 되는 것처럼, 삶도 기초적인 깨달음을 기반으로 보태나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태도를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시는 깨달음을 기반으로 그이 삶이 배어있는 시입니다. 그것이 독자에게 울림을 줍니다. 좋은 강연, 좋은 그림, 좋은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의 감동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시라는 짧은 글속에 담는 것이 시인입니다.

최근에 시라곤 써 본적이 없는 할머니들이 글자를 배우면서 시를 써서 시집으로 출간된 것이 있습니다. 삶이 보이는 창에서 출간된 <시가 머꼬>인가 (제목이 자세하지 않지만) 그런 시집이 있는데, 많은 기성 시인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시를 써서 두고두고 읽게 만든 시집도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등이 엮은 <꽃 속에 묻힌 집>이 그렇습니다. 그 안에 문자도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들의 생각, 진정성, 삶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꾸며지지 않은 어린이들의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울림은 내가 꼭 그렇게 따라 살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는 생전 해보지도 않을 마라톤에서 쥐가난 고통을 극복하고 완주하는 장면을 봤을 때도 사람은 울림을 느낍니다. 지하도 전화부스 뒤에서 쥐에게 파먹힌 채 죽은지 삼개월만에 발견된 노숙자에 대한 뉴스에서도 사람은 울림을 느낍니다. 울림의 사건이 모든 사람을 울리는 것은 아니며, 삶에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울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가는 기발함이 아니라 울림을 표현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표현력이 없이는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자꾸 기발함을 찾고 표현해야 표현력이 늡니다. 표현력을 늘리기 위해선 쓰고 싶을 때만 쓰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써야 합니다. 표현력은 만시간의 법칙을 따릅니다. 기발함만으로는 아쉬운 뭔가가 느껴지면, 더 진정한 표현을 위해서 고민하게 되고, 말 한마디 단어 하나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관심이 쏠리게 됩니다. 염소가 매에에 하고 우는 한마디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도 있는데, 그는 염소가 우는 소리에 어린시절 엄마를 부르던 자신을 교차시켰습니다. 제 기억에 그는 거의 십년만에 그 표현 하나를 얻었는데, 이제 그는 -여전히 거의 무명이지만- 시인이 되었습니다.
신경현
제목이 '닭 우는 소리'인데 왜 굳이 '닭'이 '우는 소리'를 제목으로 잡은 건지..분명 시를 읽어보면 닭이 운다는 표현이 있는데..1행의 '긴 어둠 같은 세월'이란 표현도 '긴 어둠'과 '세월' 중 하나를 선택해서 표현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네..세상 살다 보면 온갖 일들이 우리를 덮치지.어둠도 덮치고 빛도 덮치고...짧은 시편일 수록 독자들이 납들할 만한 울림 혹은 논리(이런 표현이 적절하진 않겠지만..)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오늘도 화이팅, 친구^^
붕어
그러게, 다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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