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변치 않는 꿈

붕어 4 1,295

​아이들을 쫓아 살아온 삶에

꿈 하나 있다면

교실 문 들어서며

환하게 밝아오는 웃음소리와

눈 맞추는 것

성삼재 굽이돌아 아침을 내려온

맑은 눈동자와

포옹하는 것

논둑 따라 걸으며

광대나물, 민들레 뜯어

꽃다발 선물하던 손길과

손 마주 잡는 것

달궁의 물소리 품고 달려와

선생님 앞에 펼​쳐 놓는

달음박질에

귀 기울이는 것​

​나에게 변치 않는 꿈 하나 있다면

딩가 딩가 기타 반주에

목 놓아 흥 맞춰주는

고마운 목소리에

감사하는 것

근엄한 목소리로 

별명을 부르며 다가오는

아이에게

바보 같이 웃어주는 것

움켜잡은 줄넘기가

제 몸을 돌아

하늘을 폴짝 뛸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것

나에게 변치 않는 꿈 하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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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변치 않는 꿈
            - 이규동


아이들이 좋아라 쫓아 살아온 십 오년
아직 나에게 꿈 하나 있다면

교실 문을 들어서며
환하게 밝아오는 웃음소리와
눈 맞추는 것

성삼재 심원마을 깊숙한 곳에서
굽이굽이 돌아 아침을 내려온
맑은 눈동자와
포옹하는 것

논길을 돌아 걸으며
광대나물, 민들레 뜯어
꽃다발 선물하던
아름다운 손길과
손 마주 잡는 것

달궁의 물소리를 품고 달려와
선생님 앞에 펼​쳐 놓는
달음박질에
귀 기울이는 것​

나에게 변치 않는 꿈 하나 있다면

딩가 딩가 삼류 기타 반주에
목 놓아 흥을 맞춰주는
고마운 목소리에
감사하는 것

세상의 틀이 맞지 않아 꿈틀대는
아이들의 품에
세상을 꼭 맞춰주는 것

꽃을 닮고
물을 닮고
산을 닮아
보면 볼수록 눈물 나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품어 보는 것

나에게 아직 꿈 하나 있다면.​

---------
읽으면서 제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연갈이를 해 본 것이니 양해바랍니다. 연갈이를 하면 전달이 더 쉬
운데, 왜 전부 붙여 쓰셨는지 감상문을 다 쓰도록 이해를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맑고 깨끗합니다. '교실 문을 들어서며/환하게 밝아오'고(빛), '굽이굽이 돌아 아침을 내려'오고(물), '꽃다발 선물'을 합니다(꽃). '물소리를 품고 달려와''펼쳐 놓'습니다(나눔). '목 놓아 흥을 맞춰주'기도 합니다(공감). 아이들은 빛이고, 맑은 물이며, 꽃이고, 좋은 것을 나누려하고, 이미 공감할 줄 압니다. 이것이 시인이 본 아이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이에 대해 시인은 '아이들의 품에/ 세상을 꼭 맞춰주'고 싶고, '하나하나 품어' 주고 싶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에 대한 시인의 감정이며, 꿈입니다. '나에게 꿈 하나 있다면' 이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아이들에 대한 묘사와 비유는 참 아름답고, 관찰하는 시인의 마음에 애정이 담뿍 담겼음을 알수 있습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이 어른인 시인은 아이들에게 받은 것만큼 줄 수 없습니다. 빛과 맑은 물과 꽃과 나눔, 공감의 마음을 받았는데, 줄 것이 마땅치 않아 보입니다. 주고자 하는 꿈이 빛과 꽃처럼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아이들의 품에 세상을 맞춰주'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나, 교육 현실과 자본의 경쟁 사회를 외면한 무책임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구체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애써 아이들을 깊이 관찰한 묘사가 힘을 잃게 됩니다.

구체성은 시인의 주장에 있습니다. 이런 것은 하자, 하지말자고 주장해야 합니다. 주장을 하려면 그 주장이 '아이들의 품에/ 세상을 꼭 맞춰주'는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교육철학을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을 좋다 아름답다고만 하는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말씀 같았습니다.

어머니들이 김치 된장 좋아서 즐겨 먹으면
아이들은 저절로 따라갈 것인데
어머니들이 걸핏하면 밖에 나가 서양요리 사 먹고
고기 즐겨 먹고 아이들도 그렇게 먹이니
부모들이 모두 아이들 죽이는 거지.

...... (2001.6.29) / <산딸기 2>

이오덕 선생님의 이 시는 시인의 가치관이 담겨있습니다. 서양요리, 고기보다 김치 된장이 더 가치있다는 생각, 부모들이 예쁜 아이들에게 좋은 거 먹인다고 비싼 것이 좋은 것인줄 아는 사고방식이 아이들을 망친다는 생각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
그런데 지금 이 동네엔 아이들이 없구나
겨우 몇 아이가 있어도
모두 학교에 가서 저녁 늦게야 돌아오고
학교 안 가는 날은 학원 차에 실려
읍내로 가 버리고 없지.
그리고 그 아이들
이제는 대추 같은 것
먹을 줄 몰라.
과자나 먹지
불쌍한 녀석들이야.

...... (2001.10.25) / <대추를 털면서>

이오덕선생님의 이런 시를 아이들에게 읽어준다면 아이들은 대추가 좋은 것임을, 과자를 먹는 도회의 아이들은 불쌍한 것임을 배웁니다. 그렇게 은연중에 생긴 가치관이 평생을 갑니다. 이것은 교육자의 가치관이 교육된 것이고, 이오덕 선생님은 그것이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텔레비젼이나 부모에게 은연중에 배워서 도회지가 좋고, 과자가 대추보다 가치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
그때 내가 사람이 개나 돼지 정도로라도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했더니
더러는 어리둥절하게
더러는 고개를 갸웃거렸지.
그렇다면 이런 걸
사진이라도 찍어 보여줘야 할까?
정말 아름다운 꽃을 사진으로 찍어
아름답다고 보여주는 게 예술인가?
왜 이런 걸 사진으로 그림으로 보여주지는 못하나?
더러운 건 덮어두는 것이 사진이고 그림이고
예술이고 문학인가?

...... (2001.6.9) / <고든박골 가는 길 2>

사람들이 쓰레기를 짐차에 가득 싣고 골짜기 깊숙한 곳에 몰래 내다 버립니다. 논밭에서 일을 하며 자장면을 시켜 먹은 뒤, 빈 그릇을 치우지 않고 그냥 아무 데나 팽개치듯 버려 놓고 떠납니다. 풀약을 치면서 자기 논이나 밭에만 치는 게 아니라 이웃 밭둑, 논둑, 길가에까지 죄다 뿌려서 길이고 논밭둑이고 풀 한 포기 못 자라게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본 이오덕 님은 "사람이 개나 돼지 정도로라도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고 생각하고 말을 합니다. 개나 돼지는 이렇게 끔찍한 짓을 하지 않으니까요. 전쟁을 일으켜 서로를 죽이는 일을 하지 않으니까요. 사기를 치고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지도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앞뒤 이야기를 다 해도 제대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없답니다. (오마이뉴스 에서 인용)

인용이 너무 길어서 미안합니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사람이 개나 돼지만큼이라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다면 얼마나 좋겠니 라고 설명하는 교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런 수업에서 아이들이 사람이 개 돼지보다 못하다고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야 겠다는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더러운 것도 보여줌으로써 아름다운 것을 지켜나갈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참교육일것입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저는 예를 들자면 이런 이오덕선생님의 마음과 교육철학이 바로 '아이들의 품에/ 세상을 꼭 맞춰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품에/ 세상을 꼭 맞춰주'는 추상적인 표현보다는 이런 구체성을 획득하는 것이 이 시의 앞부분 아이들을 묘사한 구체성에 대한 댓구로 격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구체성은 현장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인께서 이미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관찰한 것과 같이,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가치의 사례를 찾아 묘사해 준다면, 이 시가 훨씬 더 풍부하고 큰 힘을 갖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 자체로도 아름다운 시입니다. 아이들을 이렇게 아름답게 비유한 시는 드뭅니다. 그것은 직접 보고 관찰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아름다움에 답하는 교사의 꿈 -그것이 시의 요지이기 때문에-이 추상으로 흘러가선 안됩니다. 이 시가 처음부터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썼다면(꿈에 대한 표현이 없다면) 얘기는 다를 것입니다. 아이들을 묘사한 부분만 가지고 아름다운 시가 완결되었을 것입니다.

시를 보면 아이들에게 매일 무언가를 가르치고 계실 것으로 압니다. 그 무언가를 이오덕 선생님처럼 꺼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꽃의 아름다움만 그려서는 안되고, 꽃의 고통과 위험도 그려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은 고통과 위험에 대처하는 자세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무례한 부분이 있었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훈계를 하고자 쓴 글은 아닙니다. 저 자신 그렇게 못하는 부족한 사람인지라 제 꿈을 투영하여 읽다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시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붕어
@@ 깜짝 놀랐어요..
별것 아닌 시에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한 가득...^^
말씀 주신 것처럼 시를 연으로 나누니 시가 훨씬 잘 들어옵니다.
언제부턴가 시를 쓸 때 연구분을 잘 하지 않았었는데...
항상 고려를 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품에 / 세상을 꼭 맞추는 것'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어요...^^
붕어
변치 않는 꿈

아이들이 좋아라 쫓아 살아온 십 오년
아직 나에게 꿈 하나 있다면

교실 문을 들어서며
환하게 밝아오는 웃음소리와
눈 맞추는 것

성삼재 심원마을 깊숙한 곳에서
굽이굽이 돌아 아침을 내려온
맑은 눈동자와
포옹하는 것

논길을 돌아 걸으며
광대나물, 민들레 뜯어
꽃다발 선물하던
아름다운 손길과
손 마주 잡는 것

달궁의 물소리를 품고 달려와
선생님 앞에 펼​쳐 놓는
달음박질에
귀 기울이는 것​ ​

나에게 변치 않는 꿈 하나 있다면

딩가 딩가 삼류 기타 반주에
목 놓아 흥을 맞춰주는
고마운 목소리에
감사하는 것

근엄한 목소리로
별명을 부르며 다가오는
아이에게
바보 같이 웃어주는 것

움켜잡은 줄넘기가
제 몸을 돌아
하늘을 폴짝 일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것

꽃을 닮고
물을 닮고
산을 닮아
보면 볼수록 눈물 나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품어 보는 것

나에게 아직 꿈 하나 있다면.​


* 주신 말씀을 듣고 공감하여 곰곰히 생각해봤는데....제가 아이들에게 뭘 주고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숙제인 것 같아요.... 좀 더 살펴봐야할 것 같아요. 제가 무엇을 주고 있는지...
박상화
세상의 틀이 맞지 않아 꿈틀대는
아이들의 품에
세상을 꼭 맞춰주는 것

이 부분을 빼고,

근엄한 목소리로
별명을 부르며 다가오는
아이에게
바보 같이 웃어주는 것

움켜잡은 줄넘기가
제 몸을 돌아
하늘을 폴짝 일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것

이 부분을 넣으셨네요. 아이들을 묘사한 부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열되어 돌출되는 부분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만 남았기 때문에 '꿈'이 무난해 졌습니다. 여기에 쓰인 대로 하기도 사실은 어렵죠. 교사도 사람인지라, 짜증나고 부지불식간에 폭력으로 억압하는 행동이 나오기 쉽습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각인되면 아이들이 폭력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폭력을 배웠습니다. 말이 필요없이 따라야 하는 일제 군대식 폭력과 억압, 작중 화자는 이 폭력적인 교사문화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깨 나가고 있습니다. 늘 그러하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이대로 계속 하실 수 있을까요? 붕어님 스스로 늘 그러한지 가늠해보는 잣대시가 되고 교사로서의 서시가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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