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매화나무가 던져주는 봄 이야기

붕어 9 3,352

한겨울이 오기 전

매화나무는 가지 끝에

하얀 꽃눈을 달았다

 

아침나절 대숲을 넘어온 햇살에

곧 터뜨릴 것 같은 꽃눈의 시간은

낮에도 밤에도

멈추어 섰고

 

살아있는 것일까?

우수가 지난 이월의 봄비에

꽃보다 맑은 침묵만 매달고

 

도대체

살아있는 것일까

 

그늘진 담벼락 아래로

겨우내 자라던 조바심과 걱정을

툭 꺾고

던져주는 매화나무의 이야기

 

껍질을 긁어내던 눈보라 서너 번

닿지 않는 깊이로 얼어붙던

추위 예닐곱 번

몸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아픔들

모두 토닥이며

가는 뿌리 끝으로 생을 움켜쥐고

숨쉴 수 없는 시간을

 

견디었기에

 

뼛속까지 파고드는 시린 시간을

견디었기에

꽃이 피고

봄이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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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걱정은 격정으로 쓰면 어떨까도 생각해 보길.
툭 꺾고..는 꽃눈이 살아있는 것인지 걱정하는 화자의 마음을 매화나무가 꺾어주었다는 것인데, 그런 뜻보다는 꽃눈이 든 가지가 꺾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으로 읽히기가 쉬워 조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가는 뿌리도 표현이 풀같지, 나무같지 않다.
요지는 견디었기에..봄이 왔다..부분인데, 이 요지를 설명하기에 앞부분의 조바심이 너무 길다. 이렇게 툭 깨달음을 던져주는 시는 더 짧아야 좋다. 그걸 좀 더 생각해 보길 바란다.

사물의 원의미를 변화시키는 훈련을 해봐라. 꽃눈이 하룻강아지 꼬리처럼 났다..든지, 봄바람이 마른 매화젓가락에 꽃눈을 얹어 밥상을 차려주었다든지..귀뚜라미가 권주가를 부르며 환한 달 한사발을 권한다든지 식으로, 여러 이미지를 섞고 의인화하고, 사람을 돌이나 나무처럼 굳히는 표현-아재는 콩밭에 박힌 큰 돌이었다, 움직일줄 몰랐다- 같은 식으로, 이미지를 뒤섞는 훈련은 표현력을 길러준다. 요즘 시들은 이 훈련을 과다하게 하여 사물을 온통 섞어 놓고 정작 뼈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슬픈 감정을 줄줄이 현란한 표현으로 늘어 놓는 것도 좋지만, 슬픔 감정의 바닥에, 이면에 무엇이 있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가 드러나야 좋은 시가 된다. 그건 말도 같지. 웅얼웅얼 주절주절 하면 안되는 것처럼. 순수시쪽은 그런 걸 많이 잃은 듯하다. 그런 반면 참여시 쪽은 너무 뼈만 있지. 주장만 있고, 설득이 없는 경우일 것이다. 설득은 또 딱 가서 이해되게 하는 표현력에서 나온다. 그게 부족하니 시가 아니라 구호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는, 순수고 참여고 간에 나누는 것이 싫고, 나눌 것도 없다. 다 삶이니 삶대로 쓰고, 말하면 될 것이다.

표현력을 기르면 뭐가 좋으냐하면, 길게 쓸 말을 줄여준다. 짧은 말로 마음이 드러나게 할 수 있다. 시는 어차피 깨우친 한 마음을 전하는 것인데, 그것만 달랑 한 줄 써 놓으면 맥락이 없어서 전달이 쉽지 않다. 그걸 보완해 주는게 행과 연으로 나누고, 비유와 은유와 호흡의 장단과 강약으로  그림을 만들어 주는 것인데, 그러니, 표현력을 기르고, 사물을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좋은 도움이 된다. 그 다음은 누구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성웅이 시는 주장만 강한 것 같아도 구절구절 은유, 비유가 마치 원래 그것인것처럼 들어가 있어서 시가 살아 움직인다. 얼핏보면 잘 안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많다. 그래서 성웅이 시가 강호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런 측면으로 다른 사람의 시도 꼼꼼이 읽어 봐라.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했을까하는 기발함에 감탄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표현이 나오려면 얼마나 이 삶을 생각했을까를 봐야 한다. 그게 좋은 시를 보는 안목이 될것이다.

주절주절 쓸데 없는 소리이나, 공부가 깊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줄 써 봤다. 시에 깨달음을 넣기가 어려운데, 마지막 연은 잘 썼다.
박상화
꿩두부
- 박기영

들어 보았어
두부에 뼈가 있다는 말
하늘을 날던
꿩이 가마솥 안에서 끓던
콩물을 구름인 줄 알고 뛰어들어
온 몸으로 뒤집어 쓰고
몽실몽실 두부틀 안에서 사리같이
앉아 있는 꿩두부
한 겨울 아버지와 만두를 만들 때
만두 속에 들어갈 두부를
하루종일 끓이며
꿩두부 흰 살안에다 탕을 친 세상을
밀어 넣었지
시큼한 고기살보다도 뼤 속에서
우러나는 국물이 진짜라고 하면서
절구에 하늘 한 쪽을 넣고
바람의 숨소리 집어 넣기위해
두부에 뼤를 새겨 넣었지
흰 두부 살갗에 갑골문자처럼 쓰여진
꿩고기
젓가락으로 두부를 집어 입에 넣으면
푸른 하늘 한 쪽이 입안에서 깨어지면서
비명같은 소리를 터뜨렸지
두부에 뼈가 생기면
눈 내린 산하가 가마솥에서 끓어 오르고
저 멀리 분단 된 나라의 하늘이
노을에 붉게 타오르면 기울어졌다

--박기영시인은 아버지가 함경도 호랑이포수셨어. 월남하고 북한식음식 식당을 하셨는데, 그 이름이 맹산식당이래. 그래서 얼마전에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이라는 시집을 내셨는데, 나는 못읽어 봣지만, 가끔 페북에서 시를 접하면 그 내공이 깊어. 한번 기회되면 읽어보길 권한다. 아버지와 고향 그리는 마음을 음식에 대어 잘 표현하셨네.
붕어
고마워요. 형.^^
요지를 말하기 위해 앞부분의 조바심이 너무 크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그래서 긴장감도 떨어지고 밋밋해진 것 같아요...
시를 쓸 때 제가 느낀 것은 하나인데 그 하나를 쓰려고 쓸데없는 둘, 셋을 적어 시의 맛을 떨어트리는...^^;;;
더 열심히 써야죠.
성웅이형 시집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참에 추천해주신 시집과 함께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정말요...^^
박상화
성웅이 시집은 다 절판되어서 구하기 힘들걸? 여기 성웅이 게시판에 1집부터 4집까지 내가 다 올려 놨으니까 거기 읽어보면 돼. ^^
붕어
아네.^^
어제 알라딘에 찾아보니 있어서 일단 주문해놨어요.
식물성투쟁의지를 제외하고는 4500원하던데요....ㅎ
그 중에 성웅이형에게는 얼마나 갈지....

형, 시의 앞부분을 다 버리면 어떨까 하여 다시 정리해봤어요.
살펴봐주세요.^^

매화나무가 던져주는 봄 이야기

봄이 되어
꽃이 피는 것이
아니야

껍질을 긁어내던 눈보라 서너 번
닿지않는 깊이로 얼어붙던
추위 예닐곱 번
몸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아픔들
토닥이며
뿌리 끝으로 생을 움켜쥐고
숨쉴 수 없는 시간을

견디었기에

뼛 속까지 파고드는 시린 시간을
견디었기에
꽃이 피고
봄이 오는 거야
박상화
아깝겠지만, 1연도 버리는게 낫겠다 싶다. 제목에서 봄이고, 마지막 연에서 꽃이 피기 떄문에 1연이 다 아는 설명이 된다. 다 아는 설명은 필요없는 것이되고. 여기서 독자를 누구로 하여야 하는가가 결정되어야 하는데, 하고자 하는 말을 더 설명적으로 하고 싶다면 1연이 잇는게 쉽겠고, 좀더 압축적으로 가고 싶다면 1연을 빼는게 낫겠지. 그건 작가가 고민할 문제네.

2,3,4연만 두게 된다면, 전에 썼던 앞부분의 조바심, 봄을 기다리는 마음 같은게 표현되지 않으니 아까울 거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 조바심하는 마음은 2연에 다 들어 있음을 알수 잇어. 2연의 관찰은 그 뒤에 기다리는 마음을 품고 있는 거거든. 3연, 견디었기에 한줄로만도 2연의 조바심이 마침내 안도의 한숨이 되고, 4연의 성찰이 유도되는 거야.

어떤 경우는, 3연을 2연에 붙여쓰기도 한다. 3연이 긴장끝에 마침내 한숨을 쉬는(꽃이 핀) 강조이긴 하지만, 의뭉스레 2연의 끝에 붙여 놓고 연과 연 사이의 간격에서 한숨을 쉬게 하기도 하지. (그게 연의 사이에 공백이 필요한 이유라면서) 그렇게 3연을 2연에 붙여 놓고 보면 4연의 앞 두줄이 다시 강조가 되지. 3연이 독립해 잇을 땐, 4연의 앞 두줄은 설명이 되고. 불여서 읽어보고 떼어서 읽어보면 미묘한 차이가 잇어. 그게 연간, 행간의 힘인데, 확실히 느낌이 달라. 자꾸 읽다보면 그 강조 또는 설명조차 길게 느껴질 때가 올거야. 무심코 나누던 연과 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게되고, 그리고나면 호흡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생각하게 돼.

호흡은 그냥 말을 길게 하는 사람, 짧게 하는사람이 다르듯하다고 생각하면 돼. 경우에 따라 늘어지게 하는 말이 설득력있을 수 잇고, 짧고 빠르게하는 게 설득력 잇을 수 있듯이, 이 경우에 툭 치는게 효과적일지, 길게 늘이는게 효과적일지 고민하게 되는 거야. 강조하느라고 말을 길게 하면 호흡이 길다 하고, 툭 던지면 짧다고 해. 길어도 되고 짧아도 되는데, 그건 말과 같이 경우에 따라 생각해야돼. 툭 던진말에 깊은 생각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긴 설명에야 비로소 이해되기도 하니까.

행, 연을 나누고 붙이면서 다시 소리내어 읽어보고, 붙이고 떼어내고 순서를 바꿔봐. 그게 피곤할수도 잇지만, 그걸 자꾸하면 시를 쓸때 호흡이 좋아져. 끊을 때, 늘릴 때가 잘 작동하게 되는 거지. 연습많이 해서 말 잘하는 아나운서나 토론자들 처럼. 그것처럼 자꾸 자기 시를 주물럭 거리다 보면  표현하면서 호흡하는 기술이 늘어. 말하는 거랑 똑같애. 이건 뭐가 좋으냐 하면 시적 착상이 떠올랐을때, 단숨에 써내려가기가 좋아. 시는 첫 느낌, 그걸 자기가 받은 감동만큼 표현하는게 제일 좋거든. 근데 호흡도 딸리고, 표현이 부족하면 그 느낌을 그 순간 못 살리지. 나중에 고치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가. 감동은 없어지고, 자꾸 뭐가 덧대지던가 주객이 전도돼. 감동은 매 순간 변하거든.

다른 사람들 시를 읽으면서 부자연스런 부분은 어디인지, 내 호흡과 머가 다른지, 나같으면 어떻게 썼을 지를 혼자 연습해 보는 것도 좋아. 난 책에다 직접대고 막 낙서를 해가면서 했었는데, 그땐 컴터가 없을 때라 그랬고, 지금은 메모장이나 워드 같은 거 띄워놓고, 필사하고나서 이래 바꾸고 저래 바꾸고 맘가는대로 실컷 바꿔보고나서 원본하고 비교해 보면 또 느껴지는게 있어. 그랬다가 며칠 후에 보면 또 그게 느낌이 다르고. 그 감을 찾아가는게 공부야.
붕어
^---------------^
넵!
고맙습니다!^^
붕어
매화나무가 던져주는 봄 이야기

껍질을 긁어내던 눈보라
서너 번
닿지 않는 깊이로 얼어붙던
추위 예닐곱 번
몸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아픔들
모두 토닥이며
가는 뿌리 끝으로 생을 움켜쥐고
숨쉴 수 없는 시간을

견디었기에

뼛속까지 파고드는 시린 시간을
견디었기에
꽃이 피고
봄이 오는 거야


* 한 번 더 정리해봤습니다...^^;
해방글터
"가는"을 살리고 싶엇구나. 그래, 그렇게 애착이 가는 시어가 있지.

시는 새싹처럼, 빙산처럼 하고 싶은 얘기를 자꾸 묻어야돼. 그리고 조금만 꺼내서 풀어야돼. 자간에 행간에 얘기를 숨겨놓고. 그러면 하고 싶은 얘기가 집중된 시어가 나와. 그 시어 하나가 뾰족한 새싹이면, 그 밑에 알뿌리만한 얘기가 잇는건데, 그 알뿌리는 독자마다 가진 경험이야. 꼭 강조할 부분만 두고 중복되는 단어를 빼버리는 것, 이 시적 다이어트가 먼저 훈련되어야만 해. 그래야 한눈에 들어오고, 다시 읽으면 자간에 묻힌 얘기가 배어나오는거야. 퇴고할때 한번 보고 두번 느끼고 세번 음미할 수 잇느냐의 관점에서 보도록 해봐.

여기서 다시 맨 처음에 쓴 시와 최종본을 비교해 읽어보면, 분명히 둘 다 괜찮을 거야. 장단점이 잇을 거야. 둘중하나를 고르라면 못고를 거야. 왜냐하면 첫감정도 좋거든. 그 조바심, 매화의 인고를 드러내느라고 빼버린 관찰자의 조바심도 좋거든. 그것도 말하고 싶어지지. 매화의 인고와 관찰자의 조바심, 두개의 프레임을  다 가지고 갈거냐, 하나로 정리할 거냐는 결국 너의 결정이지. 어려운 결정이야. 왜냐하면 그 첫감정에 독자는 모르는 화자만의 감동이 있거든. 근데 그게 더께야. 감정은 언제든 가질 수 잇는데 다이어트 훈련은 언제든 안돼. 그래서 미련없이 버리다보면 보여. 버린다고 감정이 없어지진 않으니가 다시 나온다고. 아무튼 지금은 아직 어려울 거야. 아쉬움도 잇을거고. 어느쪽을 선택하든 관계없어. 중요한건 수정본도 괜찮구나하는 걸 느끼는 거지. 이제 왜 이렇게 고쳐졌는지 아니까. 그 훈련은 다음 시를 쓸떄 반영될거야. 그러니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볼때감정에 따라 이게 좋다 저게 좋았다 하기도 하니까 그냥 둬. 그러면서 자꾸 써봐.

나중에 보면 시는 역시 스킬보다 감동이야. 아주 초기 습작도 사랑스러움이 있거든. 그 감동을 아니까. 근데 그건 혼자 느끼는 감동이고, 스킬이 따라가야 소통이 되니 어렵지.

개그는 여러종류가 있어. 애기들이 웃는 지점, 어른들이 웃는 지점이 다 달라. 어린이 개그는 어린이들과 소통하는 거지. 성인용 개그는 성인들과, 또 고차원 개그도 있고, 정치풍자개그, 블랙 코미디 같은거. 슬랩스틱 코미디도. 모든 사람을 한번에 웃길 순 없어. 사람들의 개그코드가 다 달라서 그래. 시도 마찬가지야. 스킬이 없는 시를 내놔도 작자 스스로 감동받아 쓴것은 누군가 반드시 감동하는 사람이 있어. 사람들의 개그코드가 다 다르듯이 감동코드도 다 달라. 그러나, 거기서 머무르면 더 나아감은 없지. 왜 나가야하냐고 물으면 그건 너의 갈망때문이지 누구의 요청도 아니지. 나는 혼자 그런 생각도 해 본적이 잇었고.

하여튼 생각을 많이 해라. 맨날 똑같은 네 삶과 공간안에 시가 이렇게나 많이 숨어 잇을수 잇다니 하는 놀람과 그로서 풍성해지는 생활이 시를 쓰는 기쁨이 될거야. 보물찾기하듯 잘 찾아봐. 엄청많이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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