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냄새

붕어 5 1,482

​가을

은행나무 밑에 서면 구린내가 나고

사과나무 밑에 서면 단내가 난다

나는

어떤 냄새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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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가을이 오면 나무들은 겨울 채비를 합니다. 차가운 겨울을 이기고 살아 남으려면 마음이 바쁠겁니다. 그 바쁜 마음이 과육에 맺혀, 향기를 냅니다. 마음이 바쁜 사람 입에서 단내도 나고, 구린내도 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향기는 마음의 발현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원한다고 말을 하는 셈인데, 곤충의 경우는 페로몬이라고 하고, 사람의 경우는 말글을 내는 것이고, 식물은 향기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겠지요. 어떤 것이든 혼자 살 수 없으니, 살자면 소통을 해야합니다.

은행나무가 구린내를 내는 것은 그것을 먹고 씨를 퍼트리는 동물이 구린내를 좋게 여겼기 때문 이었을 겁니다. 한국사람에게 청국장 냄새가 주는 것과 같은 식이었을 것이고, 사과나무도 같은 이치겠지요. 청국장 좋아하는 사람, 치즈 좋아하는 사람, 사과나 배의 단내를 좋아하는 사람이 제 각각이고, 과묵한 성격을 좋아하는 사람, 명랑한 성격을 좋아하는 사람이 또 제 각각이니 은행나무는 은행나무대로, 사과나무는 사과나무대로 제 과실을 좋아할 존재에게 제 방식대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자로 쓰면 향기香氣이고 한글로 쓰면 냄새입니다.

나무는 꽃을 피우면 향기를 내고, 열매가 익으면 향기를 냅니다. 자세하자면, 잎이 우거질 때 나는 냄새와 겨울에 마른 나무의 냄새가 또 다릅니다. 나무도 늘상 말을 하는 셈이지요. 어떤 나무의 둥치엔 풀이 살지 못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향기로 풀이 근접하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싫어하는 곤충은 접근하지 못하게도 합니다. 향기를 내면 바람을 불러 제 향기를 멀리멀리 퍼지게 합니다. 씨에 날개를 달아 날아가게 하기도 하고, 은행처럼 두터운 갑옷을 입혀 발아하기 전에 소화되어 없어지지 않게도 합니다. 가만보면 일년간 나무가 짓는 농사가 그리 바쁩니다. 삭정이를 분질러 떨구고, 물을 끌어올리는 봄부터 씨를 퍼트리는 가을까지 한살이가 끝나면 나이테가 한개 더 늘고, 겨울동안 나이테 먹선을 그어 한해를 마감합니다. 내년을 위해 뿌리는 더 멀리 뻗고, 몸피는 더 굵어지고, 가지도 새로이 뻗어 하늘 한 줌을 더 움켜쥡니다. 나무가 자기농사를 짓는 그 부지런함과 바쁨은 경이롭습니다. 

말없이 수선스럽지 않게 잠시도 쉬지 않고 농사를 짓는 나무에게선 좋은 냄새가 납니다. 든든하고, 강하고, 아릅답습니다. 모든 농부들에게선 그런 냄새가 납니다. 구수하고 슴슴하고 든든하고 강한 그것은 코로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는 부지런함이고 말없는, 그러나 바람을 부르는 신통력으로 멀리가는 향기입니다. (故정채봉 선생님의 '멀리가는 향기'란 글이 제게 좋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시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잠깐의 감상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은 많았을 터인데, 짧게 마감한 것은 이런 많은 생각을 독자에게 하라고 하신 뜻인지요. 그러나 더 많은 생각과 발견을 담아 독자가 더 많은 생각과 발견을 하게끔 넌지시 건네는 일도 중요합니다. 시는 짧지만 많은 말입니다. 그것을 위해 비유와 은유라는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유와 은유를 많이 쓰면 많은 말이 담기게 됩니다. 너무 많으면 요지가 어지러워 지겠지만, 적절한 묘를 찾으시면 그것이 소통이 될 것입니다.

향기를 쓸것인지 냄새를 쓸 것인지 생각해 보시는 것도 필요합니다. 시의 용어는 같은 뜻이라도 통일되어야 전달이 쉬워집니다.

폭염이 물러선지 하루만에 벌써 가을입니다. 아무것도 한 게 없이, 향기도 없이. 그러고 보면, 마음이 바빠 입에서 단내가 나지 않으면 내 가을은 아직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건필하시길. 총총.
붕어
어제, 오늘 시에 좋은 말씀들 너무 감사드려요...^^;
어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제 몸에 붙어 있었던 무언가들이 떨어져 나가며 시원하고 또렷해지는 기분이라 정말 좋습니다....
앞으로도 많으 이야기 부탁드려도 되겠죠?^^
멀지 않으면 한 번 찾아뵙고 싶기도 합니다...
신경현
예전엔 규동이가 쓴 이 시를 보고 참 명징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상화형님이 쓴 평을 보니 그 말도 공감이 가네요..다만 저는 형님이 지적한 것처럼 향기로 할 것인지 냄새로 할 것인지를 동일하게 정리하면 괜찮을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상화형님 이야기에 덧붙여 시 속에서 이야기 되고 있는 시인의 생각 혹은 시인이 시를 쓰게 되기까지의 심정을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문장 혹은 비유와 은유가 적절히  필요할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그리고 한마디 더 하자면 은행나무와 사과나무 말고 다른 나무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은행나무와 사과나무가 가지는 향기의 이미지는 너무나 분명히 자칫 뻔한 비유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다른 나무를 생각하고 그 나무의 특징과 이미지를 시인의 감정과 삶의 태도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더욱 풍성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물론 저는 지금의 시도 좋지만^^ 내 친구 규동이 화이팅!!
붕어
음...그러게... 가을에 우리 동네서 냄새 나는 놈(내가 놈이란 말을 좋아하긴 하네...^^;)들이 뭐가 있을까?...젠피? 근데 이 시에서는 더 이야기하면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고맙~!^^
붕어
일단 시의 제목을 '냄새'로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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