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여덟 평 흙바닥을 3년째 뒤집고 있는 열 두마리 닭들에게 묻는 말

붕어 6 1,926

한나절을 후벼 파도 지렁이 한 마리 얻지 못하는 닭들아

씹을 만한 모래알도 없는 팍팍한 땅위를 쪼아대야 한다지만

그래도 멀쩡한 발톱과 부리가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울타리 밖, 푸릇푸릇한 봄동 이파리 뜯지는 못해도

남쪽 산비탈 남향으로 자리 잡은 닭장에 해가 들고 바람이 이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하루에 한 번 채소 찌꺼기라도 얻어먹고

가끔 어린 손이 벌레들도 던져주니

그래도 다행이라 해야 할까

 

35일이 되었다고 노리는 손 없고

알을 낳지 못한다고 생산성을 재촉하지 않으니

그래도 다행이라 해야 할까

 

물똥이라도 쌀 량이면

마른 배춧잎이라도 몇 장 얻어먹고

윤기 나는 깃털 세워

알이라도 한 번 품어볼 수 있으니

이정도면 다행이라 해야 할까

 

움직임도 빛도 없는 곳에서

꾸물꾸물 샘솟는 삶의 의지로 성장촉진제를 쪼아대는

35일 짧은 삶의 닭들 보다는

 

1년 반 쉼 없는 생산의 끝 폐닭이란 이름표를 달고

생명이 될 수 없는 알조차 품어보지 못한채

생산성과 경제성에 팔려가는 5톤 트럭 위의 닭들 보다는

 

옆 마을 닭들이 독감에 걸렸다고

말똥말똥 눈뜨고 흙구덩이로 끌려가 묻혀야하는

닭들 보다는

 

하늘 아래 숨 쉬는 생명이 아니었던 그런 닭들 보다는

팍팍한 여덟 평 흙바닥에서의 삶을

다행이라고 말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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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신경현
짠하다..그리고 ai니 구제역이니 하는 것들로 인해 살처분 당하는 닭들과 오리들과 소,돼지가 생각난다..구체적인 진술이 돋보이고 그 진술 뒤에 이어지는 질문들이 아프게 와닿는다.좋은 시, 잘 읽고 간다^^
붕어
고마워~!^^;
박상화
열두마리 닭은 화자다. 공장 닭은 도시의 사람들이고, 자유롭고 부족한 시골의 삶과 쇠사슬에 묶여 살처분당하는 도시의 삶을 닭으로 비교한 것은 좋다. 그러나 시의 끝에 어느쪽이 좋은지 결론내지 못한 고민이 묻어있다. 혹시 큰 병원의 응급실을 이용하지 못한 슬픔일 수도 있겠다. 상황은 이해하지만, 결론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깊이 묻고 또 물으면, 답이 나올 것이지만, 이건 삶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나올 답은 아닐 것이다. 하고 싶은 말까지 파고 들어가지지 못했음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애비의 탓이라는 자책감이 아프게 읽힌다.
붕어
그러게요...형
형님 말씀 대로라면 도시도 내가 사는 세상이고 시골도 내가 사는 세상이라....
큰 아픔에 등 돌리고 나만의 세상을 찾는 것 같아 답을 하지 못했어요...
여전히 문제는 자본주의인 것 같아요...
붕어
지금 읽어보니 상화형의 말에 동문서답을 했네요.....^^;;;
박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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