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산촌살이.3

붕어 4 1,277

담벼락을 돌아서면 만나는

권씨아저씨 논둑에는

이파리 발갛게 얼어

한겨울을 나는 냉이들이

턱 붙었다

 

이파리만 봐서는

도라지만할 것 같은,

지난 봄 꽃피기 전에도

터줏대감처럼 논둑을

꽉 채우던 냉이를

아무도 탐하지 않는다

 

따뜻한 봄날이면

살아보겠다고

뿌리 내리고

꽃 피우는 놈들에게

살아보겠다고

제초제를 뿌리는

칠십 중반의 늙은 농부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소만에 한 번

처서에 한 번

농약을 뒤집어쓰고

두 번이나 죽고

다시 살아난 놈들을 지나

지리산에서 냉이를 캐는 방법은

 

이제는 산이 되어버린

양지바른 묵밭과

묵논을 찾아

아까시나무 밑에서

버드나무 밑에서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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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내용은 좋은 데 진행이 느슨하다. 4연과 5연은 숨고르기로 연을 나누었는데, 내용은 연결되고, 풍경을 묘사하느라 동원된 시어들은 서로를 지지하지 않고 따로 떨어선 것이 많아 보인다. 풍경을 그린 시가 느슨해지면 이발소그림이 되고(흔하고 임팩트가 없는), 깊어지면 문인화가 된다. 그래서 풍경 마다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작법이 더 필요하다. 겨울 냉이와 노인은 둘다 살려고 애쓴다는 모티브가 좋은데, 전개가 풀어지는 느낌이고, 농약이 없는 묵밭(이건 냉이캐는 요령이지, 의미가 되지 못하므로/ 또한 시점이 농약을 맞고도 살아난 냉이에서 갑자기 농약이 없었던 묵밭의 냉이로 바뀌어버린다.) 보다는 계속 노인과 냉이를 대비해가며 촛점을 맞춰주는 게 좋을 듯하다. 풍경시를 한 편 소개해 주고 간다.

소를 모는 노인 / 김유석

외딴집을 감고, 고구마순처럼 뻗친 길섶에
쇠똥 몇 점이 떨어져 있다.
굳은 몸을 푸는 연한 힘, 그것을 발에 뭍히고
걸어간 봄은 냄새가 좋다

삶은 고구마 같은 등성이,
외딴집에서 거기까지가 노인의 길이다.
평생을 오갔어도 항상 초행인
노인의 마음 만큼 밑드는 고구마밭이 있다.

무엇을 앞세운다는 건
그것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큼이나 정겨운 일이다.
따라가는 길도 문득 홀연해질 때
슬그머니 돌아다봐 주는 눈빛,
무엇엔가 등을 맡긴다는 것처럼
아름다운 길들여짐은 없다

내외하듯, 여물을 먹는 소의 잔등에
담배를 물고 돌아앉는 노인의 허리가 겹친다
닮은 것들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도
서로의 몸에 마음을 드리우기도 한다.
붕어
시가 참 좋다 형....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박상화
너는 시를 잘 써. 꽤 괜찮아. 그런데, 내 욕심엔 시에다 네 삶의 감정을 함께 실어주면 더 좋겠다 싶다. 가만 들여다보면 네가 가진건데, 꺼내 놓고 싶지 않은 감정들. 가난하고 힘들었던 눈물들, 벅차고 소소하게 기뻣던 미소들. 그게 좀 더 꺼내져야 진솔한 시가 나온다.
붕어
네, 고맙습니다.^^
저를 더 잘 들여다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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