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겹겹이 펼쳐진 산과
구례를 휘감은 섬진강의 물결이 아닌
사성암 절벽에서
눈을 잡아 끄는 건
벼랑 끝에 선 쥐똥나무
흙 한 점 없는 깎아지른 바위 틈에
뿌리 다 내어 놓고도
입동이 지나도록 이파리 푸른
볼품 없고 키 작은 쥐똥나무
여름 햇살을 피할 곳도
겨울 바람을 피할 곳도
목 축일 흙도 없이
삐쩍 마른 몸둥이로
위태롭게 서 있는데
굳이 걱정하지 말아야겠다
절벽의 겨울 맨 몸으로 버티고서
다시 찾은 봄이면
사성암을 휘감는 시린 향기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