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빛 환한 낮에는 보이는 것이 많아
발 밑 땅빈대부터
먼 산 소나무까지
빨간 것은 빨갛게
초록 것은 초록으로
세상을 안아다 주지만
만수천 물결이 저녁으로 흘러
빛을 떠나보낸 어둠이면
빨강이며 초록이며
모두 검은 어둠이 되어
도대체 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
하얀 쑥부쟁이
밝은 빛으로 화려한 세상에선
쏙 눈에 들지 않던 풀
밭둑에서 논둑에서
하루 종일 흔들리며
구부정하게 피어있던 꽃
땅과 함께 살아오며
깜깜한 밤에도 떠나지 못해
연보라 머리칼 하얗게 쇤 꽃
논둑에서나 밭둑에서나
뿌린만큼 거두지 못하는
설움이
밤이 되어 슬프게 빛나는 꽃
환한 낮에는 너나없이 제 자랑, 저를 뽐내지만, 어두운 밤에는 모두가 숨죽이는게 약한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러니 공포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한 옛말이 그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캄캄한 밤에 빛을 내는 꽃도 있으니, 그게 쑥부쟁이꽃이라는 시인의 발견이 아름답습니다. "연보라 머리칼 하얗게 쇤 꽃"이라는 표현은 늙은 농부의 것이니, 이 땅 하얗게 쇤 농부의 진실은 어둠속에서 오히려 빛이 나겠지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기쁨보다 뿌린만큼 거두지 못하는 설움이 더 큽니다. 아름다움과 슬픔이 잘 어우러진 시입니다.
그 맑은 물가 산내면 하며
달빛에 피어있는 쑥부쟁이 꽃이
내게 다가욥니다
흔들리면서도 억으로 세상을 부여잡고
가는 가을을 지키는 자연속에
시인은 밤을 밝히며 그들과 마주하며
밭뚝과 논뚝을 지켜낸 그 수고스럼이 꽃이 되어있습니다
규동님 많이 쓰세요
잘난놈 못난놈은 나중에 탈곡하문 쭉쟁이는 가려집니다
순간에 오시는 귀한 손님 놓치지 마시고 누추하지만 잘 모셔 보세요 ㅎ
산내면 갱핸이 한테 가보고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실상사며 만수천 뱀사골 등등 아이들과 산과 들속에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엿들으면 시 오는 소리가 들릴겁니다
잘 쓰려 끌어다쓴 인유들은 금방 표가나고 글이 살아 꿈틀되지 못합니다 쉽게 쓰세요
새벽에 산내면 마주하고 하루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