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봄이었지
일기예보에 귀 기울이며 심어놓은
고무마 세 줄
시금치 뜯으러 간 아침
알았지
지난 밤 영인이아저씨 개가
왜 그리 짖어댔는지
묵직한 주둥이로 파헤쳐진
고무마 세 줄
뿌리가 하늘로 쳐박힌
수확의 꿈
몇 개라도 건져 볼까
다시 두둑을 다져
살만한 놈들 조심스레 심어준 후
들깨를 심으러 간 날
보았지
대범한 주둥이질로
꼼꼼하게 뒤집혀진
고구마 세 줄
누군가 이야기 했어
먹을 것이 없어 내려오는 거라
인간이 만들어낸 업보라고
모든 생명이 푸르게 들끓는 시절에
먹을 것이 없을리야
인간의 업보까지 같이 갔던 맘이
먹을 것이 없다는 말에
돌아선다
백평 남짓 자갈밭 고구마 세 줄에
그리도 치밀하게 주둥이질을 한 것은
먹기 편해서였을 거라고
한 발 땅 속에 들은 칡뿌리 보다
세 치 땅 속에 들은 고구마가
먹기 편했을 거라고...
맹수가 필요해
쉽게 살기 위해
쪽밭 고구마를 뒤엎고
뒤룩뒤룩 살이 올라
덩치가 산만해진
돼지들이 활보하지 못하게
맹수가 필요해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가난한 이의 밤길을 지켜주던
맹수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