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 인사동에서 -
산골짝 산사 어디쯤에서 내려와
길 위를 하늘거리던, 풍경소리가
마음을 씻기고
꿈 실은 젊은이의 기타소리가
사람들 사이 길을 터줄 때 쯤
유과 한 상 차려놓고
넉넉한 임담을 팔던 청년 둘이
있었지
하늘로 돌아간 시인의 아내가 숨 쉬던
골목 어귀 작은 찻집도
왕을 피해 걸었다는 뒷골목 끝자락
무용담 자글자글하던 막걸리집도
할아버지 같은 술집
소주 한 병 올려놓은 유리창 너머에는
한 땀 한 땀 만들어 놓은 세상이
반짝거리고
빗방울 소담스레 떨구던 낮은 처마와
그 아래 줄을 선 손수레 사이로
어머니의 미소가
거리를 채우던 길
깨지지 않는 유리벽과
규격화된 보도블럭들
말라 죽은 숨결마저 쓸어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길
반만 채운 종이 수레가 힘겨운
꼬부라진 노인을 따라
쓸쓸한 마음을 만지작 거리며
돌아서는 인사동길
아마도 인사동을 다시걸으며 과거에 인사동에서 잇었던 추억을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인사동에서 노닐던 시절에 함께했던 사람도 그립고, 시절도 그립고, 풍경도 그리운 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을 꼬부라진 노인이 대신합니다.
마지막 연에서 자본의 이익에 압사당한 인사동(문화의 공간, 역사의 공간을 의미하는)을 묘사한 것이 시를 살렸다고 봅니다.
요즘 인사동이 그렇게 바뀌었군요.
사람 냄새가 안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