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어두워지는 가을산에 욕을 했다

붕어 0 766

늘 설마가 사람 잡았다

돌을 쌓아올리며

못뛰어 내려올 것이라는 확신을

지난 밤 돼지들은 뛰어 내려와

익어가는 벼를아작아작 밟아놨다

 

뛰는 놈 아래 기는 놈 되어

논으로 들어서는 오후

속을 들여다 보니 밖에서 볼 때보다 만신창이다

이리 밟히고 저리 밟혀 묻히고 꺾여진

나락들

확 병나발 불고 싶다가도

한 포기라도 더 살려볼 생각에 허리도 안펴고 벼를 세우는데

해가 떨어진다

아무리 손을 빨리 놀려도

앞서가는 어둠을 따라잡을 수 없다

봄부터 키워온 나락은 진흙에 누웠고,

저기 발 끝에서부터 솟구치는 부아가

어두운 뒷산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 야, 이 개새끼들아!

껍데기를 홀랑 벗겨 거꾸로 매달아놔도

시원찮을 새끼들아!

한 번만 더 내려오면 뒈지는 줄 알아라!

 

오늘부터 뒷산의 멧돼지들은

개새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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