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늘 설마가 사람 잡았다
돌을 쌓아올리며
못뛰어 내려올 것이라는 확신을
지난 밤 돼지들은 뛰어 내려와
익어가는 벼를아작아작 밟아놨다
뛰는 놈 아래 기는 놈 되어
논으로 들어서는 오후
속을 들여다 보니 밖에서 볼 때보다 만신창이다
이리 밟히고 저리 밟혀 묻히고 꺾여진
나락들
확 병나발 불고 싶다가도
한 포기라도 더 살려볼 생각에 허리도 안펴고 벼를 세우는데
해가 떨어진다
아무리 손을 빨리 놀려도
앞서가는 어둠을 따라잡을 수 없다
봄부터 키워온 나락은 진흙에 누웠고,
저기 발 끝에서부터 솟구치는 부아가
어두운 뒷산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 야, 이 개새끼들아!
껍데기를 홀랑 벗겨 거꾸로 매달아놔도
시원찮을 새끼들아!
한 번만 더 내려오면 뒈지는 줄 알아라!
오늘부터 뒷산의 멧돼지들은
개새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