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쉬운 시

박상화 0 1,164

 

 

이랜드 매장 입구에 

하나님이 텐트를 치셨다

 

날 때에 하나님께서 부여한 존엄한 노동에 예의를 지켜라

노동자의 자존심을 네 주를 대하듯 존중하라

 

농성 몇 백일째 

하나님께선 칠일만에 쉬셨으나

하루도 쉬지 못하는 소명에 

여린 주먹을 쥐고 하느님의 가슴을 때리다가 지쳐 쓰러진 

어린 양의

갈라 터진 두꺼운 손에 쥐어준

김남주의 시집 한 권

 

힘 내세요

아주 쉬운 말로 씌여진 책이예요

김남주를 모르는 그 노동자에게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든가 모르는 그 슬프고 괴로운 손바닥에

시집 한권을 놓고 돌아오면서

하나님의 손은 

저렇게 부르트고 갈라터진 상처투성이 두꺼운 손일거라고

바람과 냉기의 집같은 저 텐트안에 거하실 거라고

 

그날 이후로 나는

알아듣기 쉬운 시를 써야하는 이유를 알았고

언젠가는

꼭 그런 시를 쓰겠다고 

텐트 안에 거하시던 그 분과 약속하였다

 

 

201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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