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박상화 0 1,003

 

 

큰마당을 지난 안개가 모라골 논 둑 어정거릴 때 쯤

새벽을 베어다 가마솥에 앉히고 쇠죽을 쑤던 형님

구들이 뜨거워 잠을 깨 나가보면

아궁이 가득 넘실대던 형님

새마을 모자를 쓴 4H청년회 회장이었던 형님은

농촌지도자의 집이라 씌인 철딱지가 박힌 대문간 사랑방에서

화로에 막걸리를 데워 마시고

재 위에 글씨를 쓰면서 혼자 무슨 생각에 골똘하곤 했다

하루 종일 일년 내내 일을 하고도 

싫다 지겹다 할 줄 몰라서, 

머슴도 상머슴이고 일꾼도 큰일꾼이라고

온 동리사람들 엄지를 세워들었지만

시집 올 여자가 없으니 술을 많이 마셔서 눈이 빨갰었다.

소하고 술을 나눠 마시다가 캄캄한 밤 

마흔 총각으로 명을 놓아버린 형님

형님이 여물을 썰던 작두도 녹이 슬었고

장작을 패던 도끼도 

외양간도 허물어지고

사랑방도 아궁이도 화로도

형님은 소를 몰고 멍에와 쟁기까지 가지고 갔다

새마을 모자도 가지고 갔다

형님도 새마을도 소도 없이 

농협이 농사 짓는 세상이 되었지만, 

소는 무섭지 않다고 쓰다듬어 주라고

어린 내 손을 붙잡아 소머리에 대주시던 형님과

아름드리 단단하던 소머리의 촉감을

손 끝이 기억하고 있었다.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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