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빚

박상화 0 1,000

 

 

 

이것은 마치 

한걸음 걸을 때마다

살을 한 칼씩 베어내는 것 같구나

숨을 한번 쉴 때마다

수없이 많은 바늘이 숨구멍을 찌르는 것 같구나

발에는 족쇄가 차인것 같고

무거운 쇠사슬에 감겨

얼어붙은 기차를 끌려고 하는 것 같구나

목덜미는 악마가 화인을 찍어 누르는 것 같고

등에는 바위를 짊어진 것 같고

손은 기운없이 흐느적이는 미역같고

머리는 어지럽고

무엇부터 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만드는구나 

혀는 굳어서 말이 되질 않고 

눈동자는 흐려져 자꾸 울고 싶고

볼은 난로의 빨간 석탄처럼 달아올라 당황스럽고

귀는 지옥의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 윙윙거리고

눈꺼풀은 쇳덩이처럼 무거워

암흑을 갈구하는 자처럼

자꾸 눈이 감기는구나

걸레처럼 헤진 가족도 돌볼 수 없고

아아, 도망갈 수 조차 없다

심장을 감금한 금고처럼

냉동실에 갇힌 시신처럼

돈을 내지 않고는 잠시도 열리지 않을

죽은 목숨이로구나

 

사악한 자여

돈이여, 내 목숨을 산 자여

내가 목숨을 팔고 신음하는 동안

너는 생명을 깔고 앉아 여유를 즐기는구나

손에서 손으로 건너다니며

뭇 생명을 먹고 살이 쪄

점점 비대해진

괴물

 

생명 있는 자 아무도 너를 이길 수 없고

아무도 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너는 어디서부터 태어나

어디로 갈 것이냐

 

 

201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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