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참혹한 문명

박상화 0 1,314

 

 

 

표정 하나 손짓 하나까지 닮고 싶고

신의 말씀은 언제나 옳기 때문에

네 살 된 조카의 신神은 뽀로로지만

몇 년이 더 지나면 뽀로로는 버려지고

새로운 신神이 조카를 다스릴 것이다. 

 

살아오면서 나는 무수한 신을 믿었다

간절히 기도했고, 기적도 일어났지만

많은 신들에게 버림 받았고 

많은 신들을 버렸다

 

간절하면 신이 생기고 

믿으면 신이 된다

지구 위에는 사람 수보다 많은 신들이

일자리를 찾아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배앓이를 쓸어주던 할머니의 따뜻한 손이 신의 손길이었고

함박눈 소복히 내리던 성탄절에 교회를 찾아와 

어렵게 장만한 라디오를 주고 가시던

아버지의 발자국이 신의 발자국이었던 어린 날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것은

신의 말씀이 따뜻하였기 때문이다

칭얼거림도 투정도 도란도란 들어주고 이해해 주시었다.

울면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 주시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믿음을 강요받는 신은 차갑다

의리를 배반하라 하고 진실도 부정하라 한다. 

이익을 위해 인간의 윤리나 목숨을 요구하고

이익의 교리 앞에서 투정을 부리거나 울면 

제거된다.

 

정리해고는 쌍용자동차의 부실된 원인을 숨기기 위해 희생양을 제단에 올린것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노동자들은 죄진 자를 대신하여 죄를 뒤집어 쓰고 태워져야 하는 어린 양이다. 이것은 부도덕하고, 이것은 정의롭지 않다. 책임은 권력의 크기만큼 부여되는 것이 상식이다. 백억이 넘는 파업의 책임이 권력 피라미드 바닥에 위치한 노동자에게 전부 뒤집어 씌워지고,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사측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의 판결은, 더이상 정의를 떠받들지 않겠다는 법의 선언이다.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려면 쌍용자동차가 부실된 원인을 낱낱이 조사하여 배임, 횡령, 뇌물, 탈세, 모든 부조리의 연결고리를 명백히 밝히고 모든 책임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연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가능한 모든 노력*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한 전제가 검토되지 않은 정리해고의 판단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은 형법의 기본이 아닌가. 산더미같은 노동자가 직장을 잃고 가정이 깨지고 사망에 이르렀는데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인 노동자가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게 법이라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익숙해 지고 있다.

모두가 정의를 믿지 않고 도덕을 믿지 않고

돈 위에 떠다니는 법을 의심하지 않는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지만, 

아무도 이 신앙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아아, 참혹한 문명이여

 

 

2014.11.13

 

* 가능한 모든 노력* :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며(근 로기준법 제31조 제1항),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 하여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한다(동법 제31조 제2항). (출처: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정리해고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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