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청보리같이 파리한 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퍼런 쌀 세 말만 먹고 가도 부잣집이랬던
청산도는
은청빛 곱던 우리 할머니
쪽빛 치마입고 시집오신 곳.
파름한 해무아래
시퍼렇게 날선 물결이 뱃전을 찌르고,
푸리한 초가지붕 아래
검푸른 달빛 스미던 곳.
청고기잡으러 가서 돌아오지 못하신
시아버님 삼형제분 청청하였던 앞바다와
감청빛으로 번지던 하늘을 지고
푸르뎅뎅 멍든 돌을 쌓아
주름진 구들논 파릇한 보리싹만 바라고 살던 곳.
맑은 물소리 흐르던 뱃속으로
풀빛 자식을 낳고
앞바다 등푸른 고등어처럼 싱싱하게 자라기를
푸릇한 이마를 대고
푸르스름한 아침마다 기도를 드리던 곳.
파란 하늘
새파란 바다
청록빛 섬이 하나 떠 가고
창창한 보리밭 너울져 오르는 언덕에
붉은 소 한마리 푸른 울음 울거든,
파리시레한 껍데기 따위 버린 그대에게
파릿파릿한 돌돔을 썰어놓고
소주 한 잔 하라고 건네는
그 섬, 청산도.
2014-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