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국가보안법의 가르침

박상화 0 909

 

 

피고는 다른 피고들과 

모월 모시 모처에서 회합, 학습하고..

... ..전복을 꾀하기 위하여.. (검사일도 쉬운게 아니네..)

... ..조직을 결성하고.. (침 튀는 것 좀 봐..)

... ..맞습니까? (나 한테 물어보는 건가..?)

 

날이 날마다 취해서 다 기억도 못하는 나의 행적을

저 검사양반은 어떻게나 잘 아는지,

이 친구들과 매일 만나서 막걸리를 마신건 맞다..

(난 늘 배가 고팠어..)

마시면서 인생과 세상에 대해 떠들었으니 학습도 한거지..

(살아 온 얘기들을 했었어..)

습관성 탈골이 있어서 돌은 던지지 못했지만

끝나고 술먹자니 친구들 따라 집회에도 갔었지..

(시간은 내가 부자였지..)

그려 달래니까 노동해방문학에 나온 사진을 그려준 것도 맞지..

(내가 그림은 좀 그렸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어머니 늘 말씀하셔서

나는 침묵을 지켰다.

 

6개월이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삼촌이 많은 애들은 며칠 만에 풀려나갔고

아버지가 먹고 살만한 집 애들은 

하얀 솜바지저고리를 해 입고 폼을 냈는데

춥다 소리 한번 못하고

먼 길 면회 오시면 여기 보일러 뜨뜻해요 거짓말을 하면서

홑겹 파란 수의만 입고 있었다.

 

옆 방에 있던 약장수가 나가면서

공부 좀 하라고

던져주고 간 소법전을 펼치며

독방에서 나는 비로소 국가보안법을 처음 만났는데

 

가난하고 못 배운 자들은 

이 법에 의하여 

공안검찰과 기자와 교도관을 먹여 살려야 하고,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학습할 기회를 얻고,

검사, 판사도 처자식을 봉양해야하는 불쌍한 가장이며,

거들먹 거리는 모든 것은 허명이라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존경할 종족은 이미 멸종된지 오래고

펜이든 검이든 뭐든 가진 놈들은

너희를 만나기만 하면 뜯어먹으려 할 것이니

배우고 

의심하고 

언제든지 당당히 말하여야 한다고

 

아버지의 가난과 나의 무지가 죄목이었던

그 씨발 춥던 겨울

독방에서의 가르침

 

 

201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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