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가을 해살

박상화 0 1,126

 

 

 

해살이 너무 좋아 은행나무를 꼬셔서 술을 한잔한 늙은 단풍나무가 

난 빨간데 너는 왜 안빨개지냐고

헬헬헬 웃으며 시어터진 시비를 거는 사이

 

까르르 웃음이 터져 뛰고 구르던 빨갛고 노란 낙엽들

로드킬을 당하고도 킬킬거리던 낙엽들

 

돌아가신지 20년이나 된 할머니 

아직도 가을이면 어김없이 마당에 나와 갈퀴같은 손으로 

쓸어 말리시는 빨간고추 멍석 옆을 돌아

골목길로 쪽 빨려 들어간 가을 한낮

따뜻한 해살

 

2014.11.8

 

 

*햇살이 맞지만, 여기선 굳이 해살로 쓰고 싶었다. 이하나 빠진 발음 같아서, 가을날 낮술 한잔에 발개진 할아버지들이나, 고추를 널어 말리시던 할머니처럼 이 빠진 발음이 정겨워서, 해살로 쓰고 싶었다. 해살에는 그 노인네들의 정겨운 쭈글쭈글하고 찬찬하고 다정하던 그리운 살이 담겨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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