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반행목 伴行木 - 함께 했던 나무들을 호명함

박상화 0 1,184

 

동구밖 과수원길 노래 불러주던 아카시아나무 꽃무더기 위에

한여름 들 길에서 바람부는 방향을 찬찬히 일러주던 미류나무 꼭대기에

연탄리어카 밀어주며 힘내 힘내라던 버즘나무 넓은 이파리 뒤에

일주문 너머 두 줄로 엄정히 도열하였던 샛빨간 단풍나무 아래

관악산 바위 위에 앉아 시흥, 독산동, 말미, 방미길을 굽어보던 소나무 등걸

일거리를 놓치고 돌아오던 굽은 등에 가만히 그늘 얹어주던 모과나무 아래

알맞게 잘리어 쏟아지는 흙을 떠 받치던 무명의 토류목 뒤에

파란 신문배달 자전거 토닥토닥 맡아주던 노란 은행나무 아래

붉은 땅 푸른 보리밭 너머 엄청나게 컸던 늙으신 팽나무 안에

봄바람 분홍바람에 쓸리어 꽃이파리 몇몇낱 흩고 하늘 가리던  살구나무 앞

가시 날카로운 검은딸기넝쿨을 뚫고 쭉쭉 일어서던 젊은 오리나무숲 속에

아이들의 나쁜 꿈을 막아 준다던 검은딱총나무 뒤에

감은 새벽길 검은 밤길을 밝혀주는 하얀 자작나무 옆에

 

함께 그 길을 걸어주고

울어주고 웃어주고 빈 술잔을 채워주고 토닥여 주던

언제나 곁에 있어 주었던 나무들 이름을

하나하나 나직이 부르며

혹시 오늘 출석하지 않은 그늘진 나무가 있지는 않았을까

네 이름조차 잊은 내가 되진 않았을까

세고 또 세어보는 반성

 

 

201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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