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동구밖 과수원길 노래 불러주던 아카시아나무 꽃무더기 위에
한여름 들 길에서 바람부는 방향을 찬찬히 일러주던 미류나무 꼭대기에
연탄리어카 밀어주며 힘내 힘내라던 버즘나무 넓은 이파리 뒤에
일주문 너머 두 줄로 엄정히 도열하였던 샛빨간 단풍나무 아래
관악산 바위 위에 앉아 시흥, 독산동, 말미, 방미길을 굽어보던 소나무 등걸에
일거리를 놓치고 돌아오던 굽은 등에 가만히 그늘 얹어주던 모과나무 아래
알맞게 잘리어 쏟아지는 흙을 떠 받치던 무명의 토류목 뒤에
파란 신문배달 자전거 토닥토닥 맡아주던 노란 은행나무 아래
붉은 땅 푸른 보리밭 너머 엄청나게 컸던 늙으신 팽나무 안에
봄바람 분홍바람에 쓸리어 꽃이파리 몇몇낱 흩고 하늘 가리던 살구나무 앞에
가시 날카로운 검은딸기넝쿨을 뚫고 쭉쭉 일어서던 젊은 오리나무숲 속에
아이들의 나쁜 꿈을 막아 준다던 검은딱총나무 뒤에
감은 새벽길 검은 밤길을 밝혀주는 하얀 자작나무 옆에
함께 그 길을 걸어주고
울어주고 웃어주고 빈 술잔을 채워주고 토닥여 주던
언제나 곁에 있어 주었던 나무들 이름을
하나하나 나직이 부르며
혹시 오늘 출석하지 않은 그늘진 나무가 있지는 않았을까
네 이름조차 잊은 내가 되진 않았을까
세고 또 세어보는 반성
2014.11.6